1장. 사주팔자 형성 원리와 운명(運命)
동방 고대문화의 시간관념
명리학을 가장 핵심적으로 말하면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라는 두 언어 체계를 ‘간지(干支)’라는 한 언어 체계로 통합하여 시간의 순환을 구성한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천간은 ‘하늘의 줄기’, 지지는 ‘땅의 가지’를 뜻합니다. 천지天地와 간지干支가 서로 호응하고 있죠. 하늘과 땅을 떼어놓을 수 없고, 줄기와 가지가 한 몸이듯이 천간·지지도 하나로 엮여서 시간 단위를 이뤄 변화하고 순환합니다. 동방 고대문화에서는 천지의 시간을 구분하되 통합하여 표현하는 것이죠. ‘통합 안에서의 구분’은 ‘모순 속에서의 조화’를 구사하는 동양철학에서 늘 안고 가야 할 중요한 화두입니다.
현대의 서양식 시계는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을 숫자로 가리킵니다. 시·분·초를 모두 따지는 지금의 시계보다는 훨씬 단순한 형태이지만, 명리학에서는 땅의 시간을 가리키는 십이지(十二支)로 하루 24시간을 2시간 단위로 끊어서 나타냅니다. 현대의 시간 측정보다 정밀한 맛은 떨어지지만, 동방 고대문화의 시간에는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 측정뿐만 아니라 ‘천간’이라는 음양오행 기운의 정보가 추가로 포함되어 실용적이기만 한 현대의 시간보다 심오한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단순히 수치를 지칭하는 숫자와 달리 간지에는 음양오행의 정보가 입체적으로 담기기에 시간의 성질을 추론하고 읽어내는 바탕이 형성됩니다.
나아가 현대의 시간은 연·월·일·시를 독립적으로 분리하여 각각의 단위로 시간을 표기하는 데 반해 동방 고대문화의 시간은 연월일시를 모두 60간지라는 같은 의미 체계로 엮습니다.1) 명리학의 만세력에서는 연월일시 시간 간의 관계가 형성됨으로써 의미와 해석의 다양성을 크게 확장하게 된 거죠.
현대의 날짜 표기 체계에도 12단위로 순환하는 월과 시는 명리학의 십이지와 그대로 직결됩니다(십간十干의 보조). 현대의 날짜 표기에서는 순환하는 규칙성이 따로 없이 연도는 끝없이 발산하고 일은 달을 기준으로 불규칙하게 끊기는 데 반해, 명리학에서는 십간(十干)을 주축으로 년과 일도 10단위로 정확하게 순환한다고 봅니다(십이지의 보조). 월과 시의 12단위 순환은 달의 공전 주기와 지구의 자전 주기로 물리적인 관찰이 가능한데, 년과 일의 10단위 순환은 형이상학적인 수리(數理)에 기반한 기운의 흐름이기에 물리적인 관찰은 불가능하고 직관과 추론으로 이해해야 하는 다소 난해하고 신비로운 영역입니다. 정확한 물증을 요구하는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죠. 수리에 대한 논의는 3장 「음양오행」에서 자세히 이어갑니다.
60간지의 순환을 사주팔자라는 네 시간 단위(연월일시)로 나타낼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는 60(연)×12(월)×60(일)×12(시)=518,400가지입니다. MBTI가 16가지의 성격 유형으로 사람을 분석하는 마당에 이 정도면 시간의 성질과 거기에 반영되는 ‘운명의 형식’ 유형을 섬세하게 분석하기에 충분해 보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카르마와 자유의지가 반영된 ‘운명의 내용’은 그야말로 무한히 다양하기에 518,400이라는 수도 무한에 비하면 0에 가깝습니다.
카르마와 자유의지를 반영하지 않는 한 사주팔자 자체로 운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고 길흉을 함부로 점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따지고 보면 한시도 끊이지 않고 ‘무한’히 연속되는 자연의 시간을 사주팔자라는 구조와 60간지의 순환을 통해, 무한한 기운(氣)을 유한한 원리(理)로 분별하여 문자의 형태로 압축시킨 게 동방 고대문화의 지혜로운 시간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십간과 십이지가 60간지를 이루는 이유는 음양(陰陽)의 운동성 때문입니다. 천간과 지지 모두 기본적인 음양의 체(體)가 한 번은 양(陽)으로 성장하고, 한 번은 음(陰)으로 성숙하는 흐름으로 진행됩니다. 발산하는 양이 먼저 치고 나오고, 수렴하는 음은 그 뒤에 이루어지죠.
간지의 결합도 이 리듬을 따라 이루어집니다. 즉, 양천간은 양지지와 음천간은 음지지와 만나는 것이죠. 한 간지에서 양천간과 음지지가 만나거나 음천간과 양지지가 만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간지의 총 갯수는 10(천간)×12(지지)÷2(음양)=60가지로 나옵니다. 결합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체계와 개념을 구분하는 차원에서 하는 말이고, 실제로는 하늘과 땅이 떨어져서 존재한 적도 없고, 존재할 수도 없듯이 간지도 분리할 수 없는 한 몸으로 존재합니다.
<참고자료>
1)비록 간지로 일(日)을 기록한 것이 은대와 상대로 거슬러 올라갈지라도 간지로 월(月)을 기록한 것은 서한시대에 태초 원년(기원전 104년)에 반포한 태초율(太初律)에서 시작되었다. 간지로 년(年)을 기록하는 국가의 역법은 동한시대에 장제(章帝) 원화(元和) 2년(85년)에 시행했던 사분력(四分曆)에서 시작되었다. (…) 태어난 시간을 명리의 구조에 넣는 것은 당나라가 융성하던 시기에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루즈지 지음·김연재 옮김 『명리학의 이해-팔자명리학의 형성과 발전의 역사』사회평론, 2018 p.205~6, 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