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3요소-사주팔자와 카르마, 그리고 자유의지 ③

1장. 사주팔자 형성 원리와 운명(運命)

by 은한


예언이 가능한 이유는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현재까지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도출된 결과가 미래와 그대로 부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예언이 틀릴 수도 있는 이유는 자유의지의 개입으로 현재까지 축적된 데이터와는 결이 다른 새로운 데이터가 변수로 작용하면 미래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이죠. 이러한 변수는 결코 무시할 수 없으며 운명에 있어 함부로 예언·단언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카르마는 선악이 나뉘어 저장됩니다. 모두에게 이로운 좋은 일을 하면 선업이 쌓이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나쁜 짓을 하면 악업이 쌓이죠. 우주가 직조해낸 시간의 완벽한 흐름에 흠을 잡을 수 없듯 시간의 객관적인 흐름을 나타내는 사주팔자 자체에는 선악이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사주팔자에 카르마의 악업이 작용하면 흉이 드러나는 것이고, 선업이 작용하면 길이 드러나는 것이죠.


따라서 카르마의 내용을 알기 전에는 사주팔자를 읽을 때 선악·길흉에 결코 치우쳐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운명의 형식을 나타내는 사주팔자의 특징과 꼴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중립적으로 공정하게 읽어야 하죠. 자유의지는 본래 선악이 없는 (선으로 가득 찬) 절대계의 신성한 영(태극)으로 발현되지만, 현상계에서 작용할 때는 카르마의 영향을 받아 선악이 대립하게 됩니다.


인간의 영혼은 신의 정신을 집중적으로 바라보며 자신을 보존할 때에는 더 자유롭지만, 물질적인 것들에 영향을 받아 흩어지면 덜 자유롭게 되고, 땅에 속한 것들에 매이고 묶이게 되면 더 한층 자유롭지 못하게 되며, 악에 사로잡혀 인간으로서의 고유한 이성을 상실하게 되면 마침내 노예가 되어 버린다. (…) 그들에게 의지의 자유가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들에게 주어진 의지의 자유에 의해서 그들 스스로가 선택하여 노예가 된 것일 뿐이다. (보에티우스, 『철학의 위안』)1)


그러므로 내가 ‘한 가지 법칙’을 깨달았으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속사람’(양심, 성령으로 거듭난 영혼)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몸의 다른 부분 속에서 ‘한 가지 다른 법’(죄의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몸의 다른 부분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봅니다. (로마서 7:21~23)2)


보에티우스와 사도 바울의 말처럼 시공을 초월한 ‘신성한 자유의지’(신의 정신·하느님의 법·태극)를 선을 행하는 방향으로 발현하고 싶어도, 시공에 제약된 ‘카르마의 방해’(땅에 속한 것·죄의 법·음양)로 인해 그것이 대립하고 좌절되기도 하는 것이죠.



<참고자료>

1)보에티우스 지음·박문재 옮김 『철학의 위안』현대지성, 2020 p.247

2)윤홍식 『도마복음, 예수의 숨겨진 가르침』봉황동래 2021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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