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메타 명리의 근본원리: 삼극(三極)
동양철학에서 하느님(神)이라고 볼 수 있는 태극은 역할에 따라 본체는 무극, 작용에는 황극이라고 구분합니다. 같은 절대계 차원이지만 뚜렷이 구분되는 역할에 따라 이름을 다르게 부르는 것이죠. 이렇게 무극·태극·황극을 통틀어 ‘삼극(三極)’이라 하는데, 우리 민족은 ‘3’이라는 수리와 유독 친숙합니다. 이는 고조선에서부터 이어져 온 원방각(圓方角) 삼재(三才) 사상의 영향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민족 경전인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는 고조선 삼재 사상의 핵심 아이디어를 담고 있습니다. 『천부경(天符經)』에서는 무(무극)에서 시작된 하나(태극)가 셋(삼태극·삼재)으로 쪼개지는(一始無 始一 析三極) 하느님의 창조 원리를, 『삼일신고(三一神誥)』에서는 셋이면서 하나가 되는 하느님(三一神)의 존재 원리를 보여줍니다.
태극이 우주 만유의 근본원리를 통으로 품고 있다면, 무극은 태극을 중심 잡는 존재의 핵이 됩니다. 태극 자체도 절대계 차원이지만 무한한 근본원리(多者)를 주재하는 단 하나의 절대적 존재(一者)인 무극을 다시금 상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양 철학자 플라톤의 『국가론』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에서 ‘이데아(태극)’와 ‘선(善)의 이데아(무극)’로 절대계의 층위를 구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인식되는 영역에서 보게 되는 선의 이데아는 고심해야 겨우 볼 수 있는 것인데 이는 모든 아름다움의 원인이네. 또한 눈에 보이는 영역에서 빛과 이 빛의 주인을 낳는가 하면, 지적 영역에서도 그 자신이 주인이 되어 진리와 지성을 공급하는 것이지. 무릇 이성적으로 행동하려는 자라면 이 이데아를 보아야 할 것이네. (…) 영혼의 눈을 떠 '선 자체'를 본 다음, 이를 본보기로 국가와 국민들 그리고 자기 자신을 통치하도록 해야 하네.1)
‘모든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것’이 ‘무극(선의 이데아)’이라면, ‘모든 아름다움’은 각각 하나의 이데아를 총체적으로 품고 있는 ‘태극’입니다. 또 ‘진리와 지성을 공급하는 주인’이 ‘무극(선의 이데아)’이라면, 각각의 진리·지성(이데아)을 통합하는 게 태극이죠. 면우 선생님의 『이결理結』에서도 이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태극’은 혼연渾然하여 구분이 없으나, 만물의 원리는 삼연森然하여 질서정연하다. 이것은 자에 마디가 있고 저울에 눈금이 있는 것과 같으니 자연스러운 원리이다. 내 마음의 ‘밝은 덕’(明德)은 혼연하여 하나의 권역일 뿐이나, 크게 나누면 ‘4가지 본성’(仁義禮智)이 찬연하고, 세밀히 나누면 무수한 ‘원리’(理)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 하나의 ‘(통체의) 원리’(무극)로서 무수한 ‘(세부의) 원리’(태극)를 갖추는 것은 ‘원리’의 본성으로, 하나의 ‘원리’ 안의 각 나뉨은 다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續下-1. 원리는 원리를 갖추고 있다(理具理)]
묘하게 작용하는 주체는 혼연하여 하나인 ‘원리’(渾然一理, 무극)요, 묘한 작용을 받는 대상은 질서정연하되 각기 다른 ‘원리’(태극)이다. 하나의 ‘원리’(무극)로 무수한 ‘원리’(태극)를 주재하는 것이, 바로 ‘원리’가 묘하게 작용하는 원인이다. [續下-2. 원리는 원리에 묘하게 작용한다(理妙理)]2)
<참고자료>
1)플라톤 지음·이환 편역 『국가론』돋을새김, 2015 p.202,219
2)면우 곽종석 저 윤홍식 역 『이결』(원리에 대한 요결), 네이버 카페 <홍익학당>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