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의 삼의(三義) : 불역·변역·간이 ②

2장.메타 명리의 근본원리: 삼극(三極)

by 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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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을 각성하고 실천하며 살아가면 어떤 상황에서도 늘 중심을 잡고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것이 『중용中庸』의 핵심 사상인 ‘중화(中和)’이죠.


기뻐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감정이 아직 발동하지 않은 것을 ‘중심’이라고 이르며, 감정이 발동하되 모두 절도에 딱 들어맞는 것을 ‘조화’라고 이른다. 이 ‘중심’이란 것은 ‘천하의 큰 뿌리’이며, ‘조화’라는 것은 ‘천하에 두루 통하는 길’이다. ‘중심·조화’를 이룰 수 있다면 하늘과 땅이 제자리를 잡게 될 것이며, 만물이 잘 길러지게 될 것이다.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중용』)1)


중심을 잡으면 현재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그 낌새를 직관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한 발자국 떨어져 초연하고 객관적인 마음으로 관조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나아가 어떤 식으로 대처하고 해결해야 할지 현명하게 분석할 여유가 생기죠. 직관과 분석에 따라 최선을 다하여 조화롭게 경영하면 상황에 막연히 끌려다닐 때와 비교할 수 없는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운명의 내용과 수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운명의 특징에는 언제나 길흉이 함께 합니다. 현상계는 음양의 이원성이 늘 붙어 다니기에 길흉도 떼어낼 수 없죠. 고사성어 ‘새옹지마(塞翁之馬)’나 ‘전화위복(轉禍爲福)’이 알려주듯 복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가 복이 되기도 합니다. 운명의 객관적 특징에 따라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것이지 무조건 좋거나 무조건 나쁜 운명은 없다는 말입니다.


음양오행의 관점에 따라 어떤 점에서는 좋지만, 어떤 점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하는 길흉을 달리 볼 수 있고, 카르마에 따라 길한 작용이 주로 나타날지 흉한 작용이 주로 나타날지 달라질 수 있고, 자유의지의 대응에 따라 길흉을 다르게 경영해갈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양심을 각성하여 중심을 잡으면 시야가 넓어져서 길흉의 기준 자체가 부분적·근시안적 욕심에서 전체적·장기적 양심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양심의 각성 정도에 따라 자유의지가 천차만별로 발현되기에 길흉의 향방이 달라집니다. 욕심이 좋아하는 길한 운명에서 양심이 어두우면 자만하여 흉의 화를 입기 쉽지만, 양심이 밝으면 겸손하여 복을 누리고 화를 피할 것입니다. 욕심이 싫어하는 흉한 운명에서 양심이 어두우면 좌절하여 악순환의 늪에 빠질 수 있지만, 양심이 밝으면 흉한 운명을 맞닥뜨려도 깨어서 자명하게 흉을 극복하고 성장하여 길로 전환할 것입니다. 같은 운명이라도 마음가짐에 따라 최선과 최악의 길이 극명하게 갈릴 수 있습니다.


명백한 잘못을 저질러놓고 애꿎은 운명을 탓하고 변명을 늘어놓을 수 없습니다. 의도하지 않은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다면 만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반성해야겠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일이 잘못되었다면 이 또한 카르마의 작용으로 알고 겸허히 수용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특정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 자유의지가 과거에 어느 정도로 개입된 것인지, 현재~미래에 어느 정도로 개입 가능한지에 따라 유연하게 해석해야겠지만, 중요한 건 어떤 사건·사고라도 지금 이 순간 중심을 잡고 깨어서 조화를 이루면 해당 상황에서의 최선의 길을 늘 찾아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리학이 공부의 근본이고 운명학이 그다음인 이유입니다. 최선을 다해 양심을 성찰하며 살아간다면 운명의 문법을 딱히 알지 못해도 운명의 낌새를 직관하며 늘 길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욕심의 관점에서는 흉한 운처럼 보여도 양심의 관점에서는 성장의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성리학은 필연적으로 닥쳐오는 길흉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든 중화를 이뤄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좋은 날)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반면 운명학을 아무리 많이 공부해도 양심을 닦지 않는다면 왜 흉한가에 대해서만 다양한 관점에서 빠삭하게 알아갈 것입니다. 욕심의 관점에서는 길한 운처럼 보여도 양심의 관점에서는 위태로울 수 있죠. 성리학을 근본으로 운명학을 활용하여 운명의 특징을 객관적으로 읽어내고, 어떻게 하면 중심을 잡고 음양의 조화를 이뤄 양심을 최대한 추구하거나 최소한 어기지 않는 선에서 욕심도 만족할 수 있는 길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궁리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자료>

1)윤홍식 지음 『중용, 양심경영의 지혜』 봉황동래, 2017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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