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메타 명리의 변화원리① : 음양(陰陽)·삼재(三才)
동방 고대문화에서는 음양의 이원성으로 세계를 깊이 관찰했습니다. 세계가 음양의 이원성으로 굴러간다는 보편법칙을 통해 개별사물의 경험을 분별하기도 했겠지만(연역법), 현상 세계의 직접 경험을 수집·분류·비교·대조하면서 음양의 이치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기도 했겠죠(귀납법).
음양을 단순히 [양은 낮, 음은 밤], [양은 하늘, 음은 땅], [양은 남자, 음은 여자], [양은 불, 음은 물]이라는 식으로 흑백논리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접근하면 자칫 음양에 대한 이해를 저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나아가 [양의 집합 : 낮, 하늘, 남자, 불], [음의 집합 : 밤, 땅, 여자, 물] 이런 식으로 단순 분류하는 것은 인지 구조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음양의 관계는 지극히 상대적이라 관점·기준에 따라 음양을 달리 볼 여지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예컨대 같은 낮이라도 날씨에 따라 비 오는 날과 화창한 날을 상대하면 비 오는 날은 음, 화창한 날은 양으로 볼 수 있죠. 같은 밤이라도 야행성 인간의 밤은 양, 아침형 인간의 밤은 음으로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테고요. 심지어 음양의 한자 뜻이 되는 볕(陽)과 그늘(陰)조차도 경우에 따라 볕이 음, 그늘을 양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적도 지역의 사막과 같은 환경에서 그늘진 언덕에 생물이 무리 지어 살아간다고 생각해봅시다. 이 지역에서는 ‘생물의 활동’이라는 관점에서 그늘이 양이고 볕이 음이 되는 것이죠. 따라서 음양을 미리 분류해서 확정 짓는 성급함은 되도록 피하는 게 좋습니다. 음양 분류에 어떤 상대적 관점이 적용되는지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죠. 공간·시간·에너지·성별에서 음양의 상대성이 어떻게 분류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공간의 음양 : 공간을 크게 천지(天地)로 나눠볼 때, 하나로 이어진 기운의 하늘은 양(⚊), 작은 흙덩어리들이 뭉쳐져 만들어진 물질의 땅은 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향이나 소리가 퍼져나가는 하늘은 발산하는 양기를, 물질을 떠받치고 씨앗을 심는 땅은 수렴하는 음기를 대표하죠. 부피와 활동성의 측면에서는 하늘이 월등하지만, 밀도와 생산성 측면에서는 땅이 압도적입니다. 음양의 이원성 법칙은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역할을 비교·대조하여 세계를 더 잘 파악하기 위한 사고 체계이지, 우열을 가리고 위계를 나누는 것은 부차적인 일입니다.
시간의 음양 : 하늘을 유영하는 바람(양기)처럼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환하고 따듯한 낮이고, 일정 영역 안에서 얽매여야 하는 땅(음기)처럼 활동이 제한되는 시간은 어둡고 추운 밤입니다. 하루 중에는 낮을 양, 밤을 음으로 배정합니다. 같은 논리로 시간 단위를 1년으로 확장하면 봄·여름은 양, 가을·겨울은 음으로 배정합니다. 시간 단위를 일생으로 따지면 초년·청년은 양, 중년·말년은 음이 됩니다. 덩달아 낮에 뜨는 해와 밤에 뜨는 달도 양과 음으로 배정하죠.
과학적으로 봐도 지구 입장에서 하늘의 중심이 되는 태양은 양으로, 지구를 공전의 기준으로 삼는 달은 음으로 배정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주로 낮에는 일과를 수행하고(긴장·교감 신경-양), 밤에는 휴식을 취합니다(이완·부교감 신경-음). 이런 식으로 규칙의 일관성을 지키는 선에서 자유롭고 유연하게 음양의 배정을 확장·응용해볼 수 있죠.
활동성이 활발한 낮(양)을 긍정적으로, 활동성이 제약되는 밤(음)을 부정적으로 가치 판단하는 오해가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고정된 편견에 갇힌 인간의 1차원적인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죠. 밤의 휴식과 영감이 있기에 낮의 일이 생산적이고 창의적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밤의 성숙이 있기에 낮에 성장할 수 있죠. 낮(양)이 밤(음)보다 더 가치 있고 우월하다고 일방적으로 볼 이유는 없습니다.
고대인의 입장에서 춥고 어두워서 위험한 밤보다 따듯하고 밝아서 마음이 놓이는 낮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개별사물에 대한 경험에서 얻어진 선입견에 따라 가치 판단이 무의식적으로 누적되고 의식적으로 합리화하면서 음양의 논리를 긍·부정 평가로 확장했다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대의 편견 어린 논리를 문명의 힘으로 밤을 극복한 현대에까지 끌고 올 필요는 없습니다. 구시대의 음양 자체에 대한 잘못된 가치 판단을 비판 없이 수용하면서 양남·음녀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철학적 기반이 갖춰진 측면이 있죠. 과거를 반성하고 비슷한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며 이렇게 짚고 넘어가려 합니다.
에너지의 음양 : 시공간의 음양에 이미 나타나듯 양은 활동적이고 음은 고요합니다. 양은 발산하고 음은 수축하죠. 생명의 진화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의 발달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물’과 ‘불’은 뚜렷하게 상반된 특성을 가지기에 음양으로 배정하기에 적합한 소재입니다. 낮처럼 주변을 건조하고 뜨겁게 하며, 하늘처럼 손으로 만질 수 없고 위로 뜨는 ‘불’은 양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밤처럼 주변을 습하고 차갑게 하며 땅처럼 손으로 만질 수 있고 아래로 흐르는 ‘물’은 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태양은 불처럼 타오르고 있고, 달은 여자의 생리 주기나 바다의 조수간만의 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듯 물과 관련이 깊습니다. 양:[하늘-낮-태양-불], 음:[땅-밤-달-물]로 음양 배정의 논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죠.
성별의 음양 : 남성(수컷)은 성기가 겉으로 돌출되어 있고, 여성(암컷)은 성기가 안으로 수렴되어 있습니다. 양기를 대표하는 하늘은 발산, 음기를 대표하는 땅은 수렴하는 성질을 보이죠. 효(爻)의 모양도 양효(⚊)는 남성의 성기처럼 작대기가 이어져 있고, 음효(⚋)는 여성의 성기처럼 벌어진 사이에 빈틈이 있습니다. 땅에서 씨앗이 심어져 식물이 자라듯 자궁에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수정란(씨앗)이 되면서 태아가 자랍니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수컷)의 번식 전략은 양(quantity)으로 밀어붙이며 한 회의 사정에 수천만에서 수억의 정자를 배출합니다. 여성(암컷)의 번식 전략은 질(quality)로 한 달에 한 번 하나의 난자를 배란합니다. 하늘의 부피가 크고 활동성이 자유롭듯이 정자는 양이 많고 적극적으로 운동하죠. 땅의 밀도가 높고 활동성이 제한되듯 난자는 질로 승부하고 건강한 정자를 기다립니다. 정자는 사실상 정보를 제공하는 용도밖에 없으며, 난자는 정보와 함께 양분을 지니며 실질적으로 물질을 길러냅니다. 정자는 하늘-파동의 양기처럼 형이상의 정보가 대표 속성이고, 난자는 땅-입자의 음기처럼 형이하의 물질이 대표 속성입니다.
진화론에 따르면 수컷은 최대한 다양한 암컷에게 자주 씨를 뿌리며 방랑하는 것이 유리한 번식 전략이며, 암컷은 질 높고 건강한 최적의 수컷을 골라내서 정착시키고 길들이는 게 유리한 번식 전략이라고 말합니다. 수컷에게 유리한 번식 전략은 낮의 자유로운 활동성, 암컷에게 유리한 번식 전략은 밤의 제한된 활동성과 상응합니다. 남녀(암수)의 생물학적 세 특성 1)성기 형태, 2)정자와 난자의 특성, 3)수컷와 암컷의 번식 전략에 기인했을 때 남성(수컷)을 양으로, 여성(암컷)을 음으로 배정하는 게 자연의 이치에 합당하죠.
다른 경우도 모두 마찬가지지만 남성을 양, 여성을 음으로 보았다고 해서 백 프로 순수한 음양으로 고정되어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남성에게도 여성호르몬이 흐르고, 여성에게도 남성호르몬이 흐르죠. 중년 이후로 접어들면 호르몬 비율이 점차 바뀌면서 남성은 음적으로, 여성은 양적으로 변해갑니다. 심리학자 칼 융은 남성이 지닌 무의식적 여성성을 아니마, 여성이 지닌 무의식적 남성성을 아니무스라고 명명했습니다. 양기를 기본으로 하는 남성에게도 여성성(음기)가 내포돼있으며(양중음), 음기를 기본으로 하는 여성에게도 남성성(양기)가 내포돼있습니다(음중양).
비중에 따라 유난히 음적인 남성도 존재하고, 유난히 양적인 여성도 존재할 수 있죠. 그게 극단까지 치달은 사람 중 일부는 동성애자가 되기도 하고, 스스로의 성적 정체성을 재정의하여 트랜스젠더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성별의 타고난 외관 자체는 대개 흑백의 이분법으로 결정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고, 그릇의 내용물에 따라 성 정체성이 달라질 여지도 수용해야겠죠. 음양을 흑백의 이분법으로 보지 않고 무한한 명암의 스펙트럼으로 융통성 있게 볼 수 있다면 당연히 그러한 현상을 별다른 편견 없이, 유별난 특별대우 없이, 거부도 권장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존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