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계 태극을 전제로 한 현상계 음양의 특성 ①

3장. 메타 명리의 변화원리① : 음양(陰陽)·삼재(三才)

by 은한


음양은 본래 태극에서 비롯한 떼어낼 수 없는 한 몸이기에 음양이 서로 맞서서 일대일 대립·분열하는 양상이 아닌 절대계의 태극(중심)에서 비롯된 상대적인 음양이 조화·통합하는 양상이 진리에 가깝습니다.


1)절대적인 태극을 전제로 한 음양의 상대성

하루에서도 그렇고, 한 해에서도 태양은 시간을 나누는 기준이 됩니다. 인간에게 태양이 떠 있는 낮은 활동하는 시간이고, 태양이 진 밤은 휴식하는 시간이기에 낮을 양, 밤을 음으로 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태양이 떠 있는 시간이 긴 봄과 여름은 활동 시간이 길어지고, 해가 짧은 가을과 겨울은 활동 시간이 적어지기에 봄·여름은 양의 계절, 가을·겨울은 음의 계절로 보았죠.


음양이 각각 독립적인 근원을 두고 서로 대립하면서 힘을 겨루고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태양을 중심으로 자연히 음양 중 하나가 일어나면 하나가 물러나고, 하나가 물러나면 하나가 일어나는 상대성을 알 수 있습니다. 하루로 따지면 지구의 자전 주기에 따라 햇빛을 정면(낮)이나 측면(아침·저녁), 후면(밤)에서 받는 시간대가 있을 뿐이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어둠에 지배당하는 시간은 없습니다. 한 해도 하루와 마찬가지고요.


태양계 차원에서 살아가는 지구인 입장으로는 절대적인 햇빛(태극)을 기준으로 명암(음양)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달라질 뿐입니다. 음과 양의 대립이 아닌 음양의 상대성이 태극을 전제로 한 음양의 본질이죠. 음양으로 상정되는 밝음과 어둠이라는 일대일 대립 구도가 기실 [더 밝음, 덜 밝음]의 상태를 ‘부사의 명사화’로 압축하여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선과 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본성(양심)은 본래 선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다만 그러한 절대계의 선이 현상계로 나아가면(진화進化) 중심으로부터 멀고 가까운 ‘원근(遠近)의 이원성’, ‘진화(進化)의 이원성’에 의해 필연적으로 왜곡되고 가려지는 것이죠. 그래서 선에서 멀어진 ‘덜 선함’, ‘선이 거의 드러나지 않음’, ‘선하지 않음’의 상태가 가능해지고, 이것을 일러 쉽게 ‘악’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악’이 독립적인 세력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명암이라는 인식과 개념이 빛에 의해 가능하듯, 선악이라는 인식과 개념도 양심에 의해 가능한 것입니다.


현상계의 이원성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절대계와 상대하여 발생하는 ①‘진화(進化)의 이원성’이 있는가 하면, 현상계 내에서 자체적으로 발생하는 ②‘분화(分化)의 이원성’도 있습니다. 진화의 이원성에서는 빛의 명암이 발생한다면, 분화의 이원성에서는 빨주노초파남보라는 빛의 스펙트럼이 발생합니다. 절대적인 진리에 근거하여 발생하는 진화의 이원성에서는 ‘선악’이 갈리지만, 현상계의 변화 운동으로 발생한 분화의 이원성에서는 선악을 판단할 수 없는 ‘다양성’이 발생합니다.


인류의 종교·철학·문화의 역사에서 이 두 가지 이원성을 혼동하면서 많은 문제가 야기되어왔습니다. 선악을 정의롭게 판단해야 할 문제를 다양성으로 덮어버리거나, 다양성으로 자비롭게 수용해야 할 문제를 폭력적으로 차별한 경우가 많았던 것이죠. 인류 사회에 전자는 무질서한 방종을, 후자는 부자유한 차별을 불러일으킵니다. 역학의 지혜를 통해 진화(선악)의 문제인지, 분화(개성)의 문제인지 명확하게 분별하는 게 무엇보다 우선입니다.


현상계에서는 진화의 이원성으로 인해 양심과 욕심의 비중에 따라 선악이 엄정하게 갈라집니다. 마음의 중심에 가까워 양심이 밝으면 욕심의 어둠을 지혜롭고 선하게 경영할 수 있지만, 마음의 중심에서 멀어져 양심이 어두우면 욕심이 활개를 치면서 악이 드러나게 됩니다. 선악을 엄격하게 분별하고 심판하여 양심을 응원하고, 욕심을 경계하며, 비양심을 바로잡아야만 개인의 마음에서부터 인류 사회 전체가 질서정연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현상계에서는 분화의 이원성으로 인해 스펙트럼의 무한 상대성이 발생합니다. 스펙트럼의 무한 상대성(음양)은 자연스럽게 스펙트럼의 근원이 되는 빛의 통합성(태극)을 상기시킵니다. 하나에서 비롯된 다름은 세상을 다채롭게 장식하는 다양한 개성이 됩니다. 반면 음양론을 대립과 분열이라는 투쟁적인 관점으로 보면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라는 흑백논리의 이분법으로 분리와 차이를 조장합니다. 차별과 갈등, 지배와 폭력을 유발하고 정당화할 위험이 도사리게 되죠. 분화의 이원성으로 현상계를 읽는다면 흑백논리의 이분법처럼 ‘다름(different)’을 ‘틀림(false)’으로 간주하여 차별하지 않습니다.


인류 사회의 심각한 폐해 중 종교·문화·인종·남녀 등 각종 차별 문제는 동서양을 막론한 정신문화의 음양론에서 진화와 분화의 이원성을 무지로 인해 혼동했거나, 자기 집단에 유리하게끔 의도적으로 왜곡한 탓일 수 있습니다. 즉, 분화의 이원성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진화의 이원성으로만 음양을 선악의 대립 관계로 협소하게 해석했기 때문에 벌어진 뿌리 깊은 관념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죠. 기존 명리학계에서 사주팔자 자체로 길흉성패를 따지고 평가하게 된 것 역시 분화의 이원성을 적용해 있는 그대로 수용해야 할 자연의 영역에 진화의 이원성을 갖다 붙여 가치 판단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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