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메타 명리의 변화원리① : 음양(陰陽)·삼재(三才)
삼재를 셋으로 나누면 ‘음’, ‘중’, ‘양’이고, 둘로 나누면 ‘음양’과 ‘중’입니다. 삼극의 중심에 접속하면 음양의 결을 살펴보면서 현상계를 통찰할 수 있습니다. 중심으로 접속해 들어가는 현존과 음양을 꿰뚫어보는 지혜는 함께 굴러갑니다. 중심을 잘 잡아야 음양의 양극성이 잘 잡히고, 음양의 패턴을 잘 읽을 때 균형을 더 잘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유가에서는 ‘거경궁리(居敬窮理)’라고 하며, 불가에서는 ‘정혜쌍수(定慧雙運)’라고 합니다.
영원히 현존하는 지금(시간의 중), 생각·감정·오감의 조합만 바뀔 뿐 고정불변하는 나라는 모니터의 여기(공간의 중),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나(인간의 중) 자신이기만 하면 그게 바로 절대계입니다. 무극의 고요한 평상심으로 존재하면 음양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을 수 있습니다. 태극의 알아차림으로 마음이 밝아지면 지혜와 자비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황극이 음양을 조화롭게 경영하게 도울 수 있습니다. 음양이 펼쳐내는 길흉의 변화무상하고 혼잡한 상황에 무의식적으로 끌려다니지 않고, 정신을 하나로 모아 중심을 잡을 때 비로소 운명을 제대로 경영해갈 수 있습니다.
지금이 아닌 과거와 미래에서 헤매고, 여기가 아닌 저기와 거기에 얽매이고, 순수한 나가 아닌 특정 상태로 제약된 나에 매몰될 때 현존할 수 없고, 절대계 차원에서 튕겨 나옵니다. 절대계의 근거를 잃으면 쉽게 ‘탐욕·분노·어리석음’(탐진치 삼독)에 빠져 불운과 역경에 휩싸여 흔들리고 맙니다.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정신을 차리고 마음의 중심을 찾기만 하면 반드시 음양의 결을 파악하여 카르마를 주체적으로 경영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순수한 나로 깨어있으면 삼극에 충만한 고차원의 능력을 끌어다 쓸 수 있습니다. 생각 차원에서는 선악을 올바르게 판단하며, 감정 차원에서는 선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악을 미워하고 슬퍼하며, 감각 차원에서는 선을 가까이하고 악을 멀리할 수 있습니다. 홍익학당에서 교육하고 권장하는 세 과목 ①깨어있음과 ②양심 성찰, 그리고 ③호흡 수련을 꾸준히 정진하다 보면 삼극과 함께 현존하는 시간의 양질이 향상되면서 군자의 양심적인 삶으로 인도해줍니다.
천지자연의 운행(객관적 대우주·陰陽)은 그것을 의식할 생물(주관적 소우주·中)이 있어야 비로소 생명력이 부여되며 진정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가의 유심론은 ‘만법은 오직 알아차림 뿐이다(만법유식萬法唯識)’,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말합니다. 일반 상식적으로는 황당무계하고 허무맹랑하게 들리는 이 소리가 최근 과학적으로도 조금씩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현대 물리학의 양자역학에서도 관찰자(人)의 참여 여부에 따라 참여하면 입자화(地)되고, 참여하지 않으면 파동화(天)되는 입자·파동의 이중성이 발견된 것이죠. 관찰자의 의식이 중심적인 주체(中)가 되어 관찰 대상이 되는 입자·파동의 이원성(陰陽)을 결정한다는 건 동양의 삼재 사상, 유심론과 깊이 연관되는 현상입니다. 앞으로는 과학과 철학, 물질과 정신의 진리가 하나로 통하는 게 상식인 세상이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