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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Feb 10. 2022

본간지 위상의 철학적 탐구 ①

5장.메타 명리의 세 위상 : 본간지(本干支)

위의 본간지 그림은 ‘토土(흰색 원○)’를 중심으로 하늘과 사람, 땅이 연결성을 가지는 모습으로 디자인했습니다. 천본의 토土는 참나(영), 인간의 토土는 에고(혼), 지지의 토土는 육체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천본의 토土는 절대계에서도 중심에 있는 ‘무극’이고, 나머지 선천 십간을 모두 포괄한 작은 동심원은 ‘태극’입니다.


인간의 토土는 ‘나라는 생각’을 가진 에고이며 나머지 후천 십간은 에고가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는 일체의 생각·감정·오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머리의 편견). 손으로 움켜쥐는 걸로 상징되는 모든 소유 대상, 발로 밟아보는 걸로 상징되는 모든 경험이 에고가 집착하는 대표적인 ‘나의 것’이죠. 지지의 토土는 ‘물리 세계’에 접속하게 해주는 ‘육체’이며, 나머지 후천 십이지는 육체와 상대하는 ‘객관적인 대우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존재론>에서 천본은 절대계의 신성, 지지는 현실계의 물질성을 뜻하고, 인간은 ‘에고’로서 전지전능한 ‘참나’와 그 자체로는 의미도 힘도 없는 ‘육체’를 중간에서 이어주는 연결고리입니다. 오각형의 삼재에서 머리는 절대계, 발은 현실계와 가깝다면 손은 그 중간에서 정신과 현실의 균형을 잡고 조화를 갖춰 창조와 결실을 이뤄냅니다.


오각형(인간人干·후천 십간)이 보여주는 로고스는 현실계의 물질에 매몰되어 ‘중생’으로 살아가는 것과 더불어 절대계의 열반에 집착하여 ‘소승’으로 살아가는 것 모두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 조화가 깨진 모습으로 ‘진정한 사람의 길’이 아니라고 말해줍니다. 도구를 활용할 줄 아는 손을 갖고 태어난 이상 절대계와 현상계를 균형 잡고 조화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대승보살도’만이 인간의 로고스에 부합합니다.


‘대승 보살’로 살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공부론 중 하나를 홍익학당에서는 「진리의 무한루프」로 가르쳐줍니다. 진리의 무한루프란 ①참나의 현존, ②자성의 직관, ③진리의 분석, ④진리의 실천을 무한히 반복하여 양심으로 욕심을 경영하는 대승보살도를 말합니다. 여기서는 동양철학과 본간지 위상의 개념에 맞게 ①삼극의 현존, ②양심의 직관, ③이성의 분석, ④언행의 실천으로 <공부론>의 용어를 변형했습니다.


①삼극의 현존을 위해서는 ‘에고(인간의 토土)’가 시선을 아래 방향으로만 두어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人干)에 집착하고, 그러한 집착을 가능하게 하는 ‘현실 세계의 변화’(地支)에 매몰되는 상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깨어있음의 명상을 통해 생각·감정·오감을 내려놓고 시선을 위(天本)로 돌릴 수 있어야 하죠.


그래서 삼극의 현존에 에고가 몰입할 수 있다면 전지전능한 ②양심의 직관을 에고도 함께 직관하여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현재 고민 중인 문제나 궁금했던 것, 집중하고 있는 분야에서 문제를 더 나은 방향으로 풀어갈 수 있는 나름의 영감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카르마와 명상의 깊이에 따라 영감의 내용과 수준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말이죠.


절대계의 직관으로 얻은 영감은 아직 언어로 해석되기 이전의 압축된 아이디어로 오기에 에고가 ③이성의 분석, 양심 성찰을 통해 정답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직관과 분석의 내용에 따라 ④언행의 실천으로 자명한 것은 따르고, 찜찜한 것은 절제해야 하죠. 현실에서 실천하면서 얻은 피드백을 통해 다시 정보를 업데이트하여 재차 현존·직관·분석하고 다시 더 나은 방향으로 실천하는 ‘진리의 무한루프’가 이뤄지는 게 곧 절대계와 현상계를 원만히 균형 잡는 대승보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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