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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Feb 10. 2022

본간지 위상의 철학적 탐구 ②

5장.메타 명리의 세 위상 : 본간지(本干支)


대승 보살은 자신을 이롭게 하여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합니다(자리이타自利利他). 유가의 군자는 자신을 닦아서 다른 사람을 바로 잡아줍니다(수기치인修己治人). 보살·군자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지상에서 정토(천국)를 일궈나가는 우주에서 가장 위대하고 신령한 존재들이죠.


명상하면 천상의 은총으로 받게 되는 영감을 통해 창조와 결실을 이루고, 일상을 살아가면서 지상의 조건으로 나를 제약하는 카르마를 수용하면서 조화를 이뤄가는 게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사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깨어난 에고(보살)는 감각과 감정 차원의 이해와 호오를 초월해 직관 차원의 진선미의 이데아로 분별하고 판단 내릴 수 있습니다. 천본(天本)이 위에서 아래로 순수하게 양심의 신호를 보낸다면, 지지(地支)는 아래에서 위로 순수하게 욕심의 신호를 보냅니다. 인간(人干)의 에고가 중간에서 양심의 소리를 잘 들어주고, 지지(地支)의 현실에서 생각을 실천으로 옮겨 욕심을 경영하면 선한 결과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반면 에고가 양심의 소리를 왜곡시키고, 현실에서 욕심에 휘둘리면 악한 결과가 만들어집니다.


에고가 인간만큼 발달하지 못한 동물은 그저 자연의 결(地支)대로 살아가면 그만이지만, 진화된 고등 동물일수록 인식의 차원이 상승하여 에고(人干)가 정교하고 선명해지면서 동시에 양심(天本)의 소리를 들을 조건이 갖춰집니다. 그 결과 나와 남을 해롭게 하는 부정적인 상황에서는 누구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나와 남을 이롭게 하는 긍정적인 상황에서는 누구나 양심이 뿌듯함을 느낍니다. 인간이 존재론적으로 참 어렵고 난감한 위치에 서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자비, 선량, 성실, 온유, 절제이니, 어떠한 법도 이것들에 저항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를 그것의 욕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살아가니 성령을 따라갑시다! (갈라디아서 5:22~25)1)


중요한 건 선후(先後) 관계든 본말(本末) 관계든 ‘천본(天本)’이 먼저인 뿌리이고, ‘지지(地支)’는 나중의 말단이라는 사실입니다. 중간에 있는 에고가 무엇을 따라 줘야 하는지는 이미 정답이 뚜렷하게 나와 있는 것이죠. 문제의 초점은 ‘양심의 소리를 따를까, 욕심의 소리를 따를까’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양심을 더 잘 따를 수 있을까’로 맞춰줘야 할 것입니다. ‘천본(天本)’에 갖춰져 있는 진리의 씨앗(인의예지의 근본원리)이 ‘인간(人干)’에서 싹으로 터져 나오도록(사단四端의 확충) 하고, 나아가 ‘지지(地支)’에서 각자의 개성에 알맞은 양심의 작품을 꽃피우고 열매 맺는다면 지상은 머잖아 풍성하고 아름다운 천국이 될 것입니다.



<참고자료>

1)윤홍식 지음 『산상수훈 인문학』 봉황동래, 2019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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