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론적 다이어트
설날에 휴가로 일주일간 부산에 있던 때는 예외로 두고, 요새는 적극적으로 식단 관리를 하고 있다. 적극적이란 것은 내가 먹는 것 하나 하나에 꽤나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말이고, 어쩌면 강박증적인 자기 통제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의 식단에 체계가 잘 잡히기 시작했고, 알바를 그만두고 삼시세끼를 다 챙겨먹어야 할 때가 오더라도 큰 시행착오없이 지금의 체계를 유지, 보충, 강화할 것이다.
아침은 사과, 방울토마토, 귤, 딸기, 포도 순으로 우선 순위를 두고 먹는다. 점심은 닭가슴살이나 돼지 앞다리살과 함께 여러 야채를 볶아 요리하고 계란후라이 비빔밥-밥은 백미가 아닌 잡곡이다-을 만들어 먹거나 하며 단백질을 챙겨주고, 반찬으로는 신선한 야채와 채소, 해산물을 챙긴다. 점심을 먹고난 직후 오메가-3와 멀티비타민을 후식으로 챙겨 먹는다. 저녁은 바나나, 견과류, 고구마, 삶은 계란을 먹으며 배가 고프면 야식으로 녹차를 두어잔 마신다.
매일 비슷한 음식을 반복해서 먹으면 금방 질릴 꺼 같지만, 생각보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맛에 대한 감각이 더 미세해지고 심화되는 것 같다. 아침에 피곤해도 금방 정신을 차리는 이유는 과일 맛이 궁금해 얼른 맛보고 싶기 때문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과일을 먹다보면, 과일 하나 하나의 성질을 느끼게 되고, 같은 과일이라도 하나 하나의 표정과 기쁨의 비명 소리를 알게 된다. 점심에 먹는 고기는 정말로 인간이 원하는 음식이고 내 몸이 튼튼해지는 것 같으며, 저녁에 먹게 될 지루해보이는 음식들도 곱씹어 먹다보면 다들 개성이 넘친다. 잠들기 전에 마시는 녹차는 그 향과 맛, 호흡에 하루의 피로가 회복되는 느낌이 든다. 또 어쩌다 일탈의 음식을 먹게 되면 어찌나 맛있는지 감격스러워 오직 음식과 혀, 입, 이, 목구멍에만 신경을 써 몰입한다.
작년 12월까지만 해도 주말 야식은 내 일주일의 확고한 시스템이었는데, 이제는 평일 고생했으니 주말 막보내야지 하는 주말-특권의식도 없앴다. 25살이 되고, 20대가 꺾이자 한달의 무게가 전과 달리 무거워진 탓도 있다. 생각해보면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내 인생의 2/7를 낭비하기가 두려워진 것이다. 야식하는 게 뭐 커다란 잘못은 아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야식을 먹기 전,중,후-다음날 아침까지 해서 내 생활에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게 사실이었다. 이런 사실에 더불어 식단 관리를 시작했으니 주말 야식의 명분은 완전히 사라졌고, 욕구 또한 쉽게 절제하게 되었다.
식단을 관리하니 사람도 함부로 막 만나지 않게 되었다. 남자의 경우는 술, 술, 술과 맛있는 안주를 먹게 되고, 여자의 경우 맛있는 거 맛있는 거 맛있는 거와 술을 먹지 않나. 그러니 정말 만남과 친밀도, 관계의 잠재성, 만족도의 인과관계-함수를 고려해 신중하게 만나도록 한다. 한달에 한번 큰 일탈을 허용하고, 일주일에 한 번 작은 일탈을 허용하도록 해야지. 혹여나 나와 비슷한 사고관과 생활 양식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좀 더 자주 교류할 수는 있겠지만.
이번 식단 관리는 2월부터 시동을 걸어, 3월부터는 아주 엄격하게 실행해 8월까지 하여 최소 6개월 정도 수행(?)해볼 생각이다. 6개월이 기준인 이유는, 어디서 본 생물학적 지식에 따르면 인간의 육체는 6개월이 지나면 모든 세포가 바뀐다고 했다. 노화돼 죽는 세포 자리를 새로 태어난 세포로 채운다는 얘기다. 그 말인즉 6개월간 세포를 형성하는 식단을 아예 다르게 한다면, 그 다르게를 전보다 영양적으로 더 균형잡히고 건강하게 한다면, 새로운 몸, 전보다 더 좋은 몸으로 다시 태어나지(부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김용옥 선생의 <중용한글역주>에 나오는 가르침에 의하면 90일 동안 자기가 정한 규칙에 어긋남 없이 지키는 게 인생을 바꾼다고 하였는데 그에 대한 로망이 스무살 적부터 있었다.
친구들에게 이 얘기를 하면 어이없어 웃고 역시 이상한 녀석이야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지만 정말 진지하게 한 생각이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내가 하는 다이어트는 물리적 변화-몸무게-나 화학적 변화-지방,근육의 비율-를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아예 생물학적존재론적 변화를 맞이하기 위해 실험-이벤트를 벌린 것이다. 주말을 소중히 쓰는 것, 사람을 신중히 만나는 것, 하루의 기분이 달라진 것, 음식의 성질과 맛이 달라진 것은 이 실험 초기에 겪은 유의미하고 재미난 관찰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