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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May 30. 2017

세가지 쓰레기

1.

길거리 매대를 1년 넘게 운영하면서 매번 짜증났던 게

오픈, 마감할 때마다 매대 주변에 쓰레기가 너무 많이 널부러져있는 거다.

내 자리 주변이니깐 군말없이 쓰레기를 치우긴 하는데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러니깐 누구 아들한테 미개하다는 소리나 듣지. 이따위로 후진 국민 의식이면 선진국은 멀었다'

떡볶이를 먹고 가는 사람중에도 종종 자기가 들고 온 쓰레기를 다이 위에 올려두고 아무 소리없이 가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자잘 자잘한 불쾌감을 유발하는 쓰레기,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을 보며 

가장 많이 떠올린 생각은 '나도 다른 가게, 길거리를 걸어다닐 때 무심히 쓰레기를 버린 적이 있었나?'고 

그랬던 과거의 실루엣이 휘적거리면 '앞으로는 정말 저(그)러지 말자'고 반면교사로 삼는다.


2.

오늘 점심 등산하기 전, 우리 떡볶이를 한달 전쯤 먹으러 왔던 손님중에 용마산역 1번 출구 근처에 드럽게 맛없는 떡볶이 집이 있다고 꼭 먹어보라고 추천해준 적이 있다. 드럽게 맛없는 집을 추천한 것도 갸우뚱하게 되지만, 한달씩이나 지난 뒤에도 드럽게 맛없는 그 집을 떠올려 굳이 들려본 나도 뭔가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다. 어쨌든 먹어보니 드럽게 맛없다는 평은 지나치게 가혹해보이고, 어린 시절을 떠올려주는 정겨운 맛의 떡볶이였다. 떡볶이 한그릇을 너그럽게 다 먹어칙우고 분식집을 나오면서는 종이컵에 오뎅국물을 한가득 담아 마시면서 걸었다.

오뎅국물을 다 마시고 빈 종이컵=쓰레기가 손에 남았는데, 어디 버릴 데 없나 보면서 걷다보니 다 먹은 짜장면 그릇 내다놓은 게 눈에 들어왔다. 나의 손은 거침없이 그곳을 향해 쓰레기를 내던졌다. 여기서 그 쓰레기가 짜장면 그릇 안으로 쏙 들어갔으면 오늘 아무일도 안 일어났을 공산이 큰데, 불행히도 종이컵은 짜장면 그릇과 요만큼 떨어진 엉뚱한 곳으로 낙하하고 말았다. 모든 광경을 생생히 지켜보았기 때문에 약간의 찝찝함이 생겼다. 처음에는 골인을 못했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로 생겼던 찝찝함 같은데, 몇 걸음 더 걸을수록 짜장면 그릇과 쓰레기의 벌어진 틈 사이로 양심이라 부를 만한 게 자리잡았는지 내 마음의 시선이 점점 더 강하게 그곳을 향했다. 괜히 한번 뒤돌아보았지만 몸은 거침없이 산을 향했다. 

문득 가게에서 쓰레기 버리는 사람들을 혐오했던 그 감정이 떠올랐고 나는 저러지 말자, 앞으로는 그러지 말자고 반면교사 삼고, 반성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다른 사람을 욕하던 바로 그 짓을 내가 방금 무의식적으로 해버린 거자나. '다시 돌아가서 주워올까' 생각이 들었지만 목적지를 향한 몸의 흐름을 깨트리기 싫었고 '효율성'의 측면에서 양심은 합리화를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걸으면서 계속 생각이 찌르는 건 짜증났던 경험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짜장면 배달원이 저걸 같이 주워갈까? 그러면 아 누가 매너없게 여기다 같이 버린 거야하고 짜증내겠지?' '배달원이 저걸 외면하면, 쓰레기는 계속 저자리 남을테고 집주인이든 다른 누군가든 치워야할텐데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겠지?'

산을 향하며 저 쓰레기=찝찝함은 지나간 일이라 어쩔 수 없다 치고, 앞으로는 진짜로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야지.라고 굳게 다짐했다.


3.

등산을 하다 팔각정에 다다랐고, 거기에 앉아 비닐봉지에 싸온 포도, 딸기, 바나나를 먹었다. 과일액이 봉지에 묻어있었지만 이번에는 당연하게 봉지를 다시 가방안으로 넣었다.

정상을 향해 다시 등산을 하는데 어떤 표지판에 마주치고 말았다. <내가 버린 조그만 쓰레기 온 산을 더럽힙니다> 그래, 난 이제 쓰레기를 안 버릴 꺼야 하며 산을 오르려 하는데 왠지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들에 빛이나듯 눈에 들어왔고 나는 그것을 차마 내버려두고 올라갈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지금부터 내가 가는 길에 버려진 쓰레기가 눈에 보이면 모두 주워서 올라가자' 결심했다. 반경을 너무 벗어난 것이 아니면 약간 에둘러가더라도, 허리를 계속 숙이고 쓸데없는 몸짓을 만들어야 함에도 쓰레기를 하나둘 양손으로 움켜쥐며 올라갔다.

평소에 하지 않는 낯선 행동은 스스로에게도 어색한 나머지 굳이 하지 않게 되는데, 아까 내가 버린 쓰레기, 그동안 치워온 가게 주변의 쓰레기, 그 두 쓰레기 사이의 갭 등등이 못내 가슴에 걸려와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어찌보면 스스로에게 벌을 내리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막상 쓰레기를 주우며 올라가니 아까 생긴 부끄러움은 다행히 점차 작아졌고, 많아져가는 쓰레기만큼 자부심이랄지 하는 긍정적인 감정이 생겼다.

산꼭대기에 올라와 양손 가득찬 쓰레기를 아까 넣어둔 봉지에 담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쓰레기를 주우면서 올라온 거야?"하고는 대견스럽게 바라보았다. "네"하고 수줍게 답하고는 마저 정리하니 아저씨는 "산에 오를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야"라고 말했다. 산을 내려가며 다시 눈에 보이는 쓰레기마다 가방 주머니 여분에 담아왔다.


4.

남이 아무렇게나 버린 쓰레기를 어쩔 수 없이 치워야 했던 나. 그랬던 내가 느낀 감정과 떠올린 생각.

내가 아무렇게나 길가에 쓰레기를 던져놓은 것. 계속 나를 찔리게 했던 그 쓰레기와 생각들.

남들이 아무렇게나 버린 쓰레기를 자발적으로 주워온 나.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생각.

세가지 쓰레기와, 그걸 각각 다른 방식으로 다루는 세명의 나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상황에 불쾌감을 느끼는 것, 불쾌감에 의해 상황이나 타인을 욕해보는 것, 그 타인이 내가 되어버린 미숙함과 당혹감.

무의식적인 행동을 예리하고 냉정하게 바라본 그 시선은 불쾌감을 느끼고 욕을 하고, 반성을 하고 반면교사 삼았던 경험이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 시선의 연장선이 남들이 버린 쓰레기를 줍게 만들었고, 오늘 하루 짧은 시간 안에 있었던 극적인 변화, 쓰레기를 무심히 버렸던 내가 얼마후에는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있는 족족 주워담았던 몸으로 겪은 이질감과 격차는 내가 다시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게 만들어줄 것이다. 오히려 앞으로 등산갈 때면 여분의 비닐봉지를 챙겨다닐 가능성이 생겼을진 몰라도.


결심과 행동은 사실 이토록 멀고도 가깝다. 멀 때는 무의식적으로 쓰레기를 버렸듯 결심과 행동은 서로 아무런 상관조차 없는 거고, 가까울 때는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주워왔듯 생각이 곧 현실이 된다. 마음과 몸 사이의 거리가 가깝기를. 언어와 삶 사이의 거리가 가깝기를. 그 모든 게 기왕이면 생산적이고 선하고 아름답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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