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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Oct 11. 2017

사라지는 것

1.

맥주를 잔뜩 마시고 땅바닥에 누우니 숨소리가 거칠다. 

죽음의 눈으로 방안을 관망하니 온도기가 21도에서 22도로 오르락 내리락 

저 온도를 건드리는 게 알콜 섞인 숨결일까 얼어붙은 눈빛일까. 

문득 내 존재가 온도 따위로 환원된 세상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도 마음도 몸도 없고, 고통도 쾌락도 없이 그저 온도로 존재하는 것이다. 

복잡하고 불안한 삶, 끝은 안 보이고 끝없이 변하는 이곳이 한없이 단순했으면. 

세상이 온도의 뭉치들이었다면 나도 주변과 적당히 조화를 이루며 적당히 어딘가로 녹아들겠지. 

있는듯 없는듯 희미해져도 상관 없고 유별날 필요도 없고.


2.

바람이 좋아지는 살가운 날씨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까지 사랑스러운 나날이지만

대낮이 아니라 한밤중에 바람을 맞으면

나도 바람이고 싶다.

아니면 바람에 휩쓸려가는 아주 가벼운 것이고 싶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자연의 법칙을 따라

어디론가 떠나고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것


3.

흘러간 음악은 적막으로 사라진다.

시간을 겹겹이 담아둔 음악은 적막 속에서 부활한다.

묘지를 뚫고 나온 시체들

제멋대로 떠다니다 불려온 유령들

표정과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로

규칙도 목적도 없는 적막한 어둠

그들은 곧잘 나타나서 곧잘 사라진다

적막이라는 무한의 공간에서

사라진 그들은 어디로 가서 뭘 하고 있을까?


4.

꿈은 하나의 온전한 세계

나는 그곳에서 새로운 인생의 조건을 완전히 받아들인채

산다. 

잠을 깨면, 세계는 완전히 파멸되고

나는 또 다시 이 삶으로 되돌아온다.

이 꿈은 너무 질기다.


5.

우주는 무한하고

죽음은 영원하다.

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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