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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Oct 11. 2017

별과 바람과 물결

모두가 잠들어있는 새벽 

반쯤 꺼져가는 불빛들은 이제 저 별빛에 묻힌다.

저 별이 반짝이는지 내 눈이 깜빡이는지 모를 잠결

가야할 길을 밝혀놓는 게 저 별인 건 잘 알겠다.


비단결로 불어오는 봄바람은 부드럽게 감싸오면서도

꽃내음 묻힌 이 바람은 저리가라 밀친다 장난스럽게

옳거니, 네가 그 밀고 당기는 묘미를 잘 아는구나

밀어도 소용없다 네게 갈테니 당길 필요도 없잖아 그리 가니깐


바람의 움직임에 한강 잔물결이 일렁이고

반짝이는 저 별빛은 여러겹 울려퍼진 물결들의 조화로운 지휘자

새벽의 바람과 별과 물결은 놀이터를 뛰노는 어린 아이들


모두가 잠든 새벽 이 시끄럽던 거리에 홀로 남아

가만히 있는 나를 두고 배경만 움직이는 건지

3인칭의 한 인물이 멀쩡히 운동하는 건지 모를 꿈결


'나 꿈속에서 이 장면을 본 것 같아'

'지금 나 꿈꾸고 있는 거 아닌가'

데자뷰와 몽유병의 아슬한 경계에서

영롱히 빛나는 저 별과

아련히 감싸오는 이 바람만이

안정적으로 균형을 잡아준다


지금 이 움직임을 그대로 멈출 순 없다

그것은 그동안 날 이끌어준 이 자전거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나의 양심으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우주도 즐거워하는 절대적인 흐름을

신호등의 빨간 불빛 따위가 무슨 영향을 주겠는가

둔탁한 자동차의 날카로운 스피드가 어찌 겁이 나겠는가


대낮에 타는 자전거에서

위치와 위치로 거리를 재고

거리에 따라 시간을 가늠할 때

이 자전거가 하늘로 날아 올랐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이 진절머리나는 도시를 밑으로 두고

수많은 차들과 사람들, 대기오염과 불쾌한 표정을 벗어나

하늘로 날아올라 거리를 뚫고 통쾌하게 나아가기를


새벽이 만들어낸 꿈과 현실과 몽상의 경계에서

빨간불은 빨간피가 되었고, 빨간피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마침내 몸과 자전거도 하늘로 날아올랐다

꿈과 현실과 몽상의 경계에서 기어코 이뤄진 비상의 꿈

위치와 위치의 목적 의식이 사라지고

몸은 하늘에서 지상으로 낙하할 필요조차 없다

영영 하늘로 높이 더 높이

반짝이는 저 별을 향해 

부드러운 바람과 장난치며 

허공의 물결을 헤엄쳐가자


꿈과 현실과 몽상의 경계에서는

죽음은 빨간불보다도 무섭지 않다

하늘로 비상하는 죽음은

적어도 삶보다는 가벼웠다

어쨌든 삶보다는 가볍다


허벅지 안쪽에서 울려오는 아릿한 통증은

현실의 중력이 되어 죽음을 되물린다

하늘로 떠다니는 몸과 자전거를

지상으로 냉정히 끌어내린다


죽음은 불현듯 삶으로 미끄러지고

몽상의 방울이 맥없이 터져버리고

꿈결의 무중력은 현실의 중력으로


다만 별과 바람과 물결은 

여전히 함께 춤추고 있네

다행히, 아름답게 그리고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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