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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Oct 11. 2017

이상한 밤

이상한 밤으로 기억되는 날이 있다. 이제 막 봄이 여름이 되려고 하는 날씨, 그러니깐 낮에는 덥고 아침 저녁으로는 꽤 쌀쌀한 그런 날이었다. 가방에는 독서할 책만 두어권 챙겨넣고는 대낮에 자전거 타고 한강으로 갔다. 막상 한강으로 가니 너무 날씨가 화창해서 책 읽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한강 공원에는 수많은 커플이 텐트를 깔고 느긋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고, 나는 그걸 보고는 너무 질투나서 그들 주위를 한바퀴 뺑돌고는 한강 자전거 길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목적지나 목표가 없는 질주였고 그냥 뒤도 안돌아보고 앞만보고 달려나갔다.


달리면서 들었던 생각은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날이 너무 어두워지거나, 자전거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정말로 계속 달리게 될 꺼 같다'이고, 막상 그만 달리게 되었을 때는 한강 자전거 길이 끊기고 이상한 샛길로 접어들고 나서였다. 표지판이랑 폰 지도를 확인해보니 여기가 남양주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여기서 괜찮은 숙소와 맥주집을 만난다면 하루 묵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다짐했는데, 불행히도 번화가를 못 찾아 그냥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날은 이미 해가 저물녘, 노을이 드리웠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막다른 동네로 모르고 들어갔다가 그 아파트 주민만 갈 법한 작은 공원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들어오는 길에서 보았던 동네마트로 가서 목을 축였다. 


해는 완전히 져서 어둑한 밤이 되었고, 나는 내가 왔던 길로만 되돌아가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는데, 날이 어두워지고 돌아오는 길은 모양도 방향도 바뀌어서인지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헤매였다. 서울을 벗어났기도 하고, 평일 밤에, 사람이 별로 지나다니지 않는 거리라 그런지 자전거를 타는 내내 사람을 별로 만나지 못했다. 길을 못 찾아 심란했지만 고요함이 묻어나오는 분위기가 다시 차분하게 만들어주었다. 표지판으로 보이는 동네 이름도 "별빛마을"이었나 낭만적이어서 이런 동네라면 더 헤매도 좋다고 베짱을 부리고픈 마음도 생겼다. 사람이 없는 거리라 주변에 조명도 드문드문 어두웠다. 건물도 별로 없어서 시야는 넓어졌고 그게 고스란히 마음에 여유가 되었을까.


똑같은 위치에 있는 별빛마을 표지판을 두어번 더 보고는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 스마트폰 네비게이션을 틀어 길을 찾았다. 낯선 풍경을 벗어나 익숙한 거리를 만나고, 어두컴컴하고 은은한 조명과 헤어지고 화려한 번화가 조명과 조우하고, 텅빈 공간만이 시야로 들어왔던 여백에 사람들이 들어차니 곧이어 집으로 도착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며 피로가 쌓이고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었고, 푹신한 매트에 쓰러지듯 누워 잠들었다.


이 경험은 아무런 목적이나 계획없이 오직 순수한 충동으로만 이루어진 날 것이어서 일상과의 맥락이 뚝 떨어져있다. 맥락이 없는 경험이라 그런지, 어느 밤이면 아무런 맥락도 이유도 없이 문득문득 떠오르는 이상한 밤이다. 이 기억이 떠오를 때면 처음에는 무심코 '이거 꿈이었지?'라고 생각하는데, 조금 더 있다가는 갸우뚱 거리며 '아 그거 진짜였나?'라고 의심하게 되고, 곧이어 혼자 웃으며 "아 그거 진짜였지. 나 왜 그랬지? 진짜 이상한 밤이었네!"라고 말한다. 비그친 오늘 밤에도 왜인지 그 기억이 뚝하고 떨어져서, 적었다. 이런 꿈같은 경험 몇 개 더 있으면 좋겠다, 하고 괜히 바라게 되는 이상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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