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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Oct 11. 2017

입체적인 언니네이발관 감상

좋은 음악은 다채로운 추억을 남긴다. 좋아하도록 학습된 음악이든 타고난 취향으로 걸러진 음악이든 (내게) 좋은 음악은 자주 듣게 되고, 자주 듣는 음악에는 다양한 것이 담긴다. 음악은 매번 같은 구성과 방식으로 흐르겠지만 그것을 어디서 듣느냐, 누구와 듣느냐, 어떤 감정으로 듣느냐에 따라 음악은 아예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음악은 단순히 일직선의 시간에서 맹목적으로 흐르는 게 아니라 자체적으로 하나의 원을 구성하고 있고 (언제든 반복할 수 있으니깐), 역으로 그렇게 형성된 원 안으로 내가 부여한 시간이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평상시였으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감정과 장소, 사람이 좋은 음악 안에서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교류하고 조화하며 스며들고 합쳐지는 것이다.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가수 이름은 몇년 전부터 간혹 들어봤지만 작년이 돼서야 제대로 듣기 시작했고 흠뻑 빠지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5집을 가장 좋아하는데, 이 정도로 자주 듣고도 여전히 찾게 되는 앨범은 비틀즈 이후로 처음이지 싶다. 서울에 살다가 오랜만에 부산에 가기 며칠 전부터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보고 싶은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광안리 바닷가에게 언니네 이발관을 들려주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흘려주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실패할 수 없는 연결이니까. 정말로 부산에 갔을 땐 광안리 바닷에서 언니네 이발관을 들으며 미소를 지었고, 천천히 걸었다.


가장 자주 듣는 방식은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어딘가로 이동할 때. 혹은 집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하고는 매트에 편하게 누워서. 이 앨범의 분위기나 가사가 그렇듯 대개 쓸쓸함과 외로움, 슬픔을 품고 되새기며 들어왔다. 하지만 이번에 겪은 경험은 완전히 새로운 상황이었다. 낯선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다섯 명의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놀았고 취했다. 운 좋게도 혹은 필연적으로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였는데 거나하게 취한 새벽 네 시쯤 컴퓨터에서 언니네 이발관 5집이 흘러나왔다. 술은 이미 주량을 넘어 기억의 파편이 혼란스럽지만 그만큼 강렬한 이미지와 감정으로 각인되었다. 우리는 다같이 떼창을 부르다가 흥에 겨웠는지 모두가 일어섰고 알 수 없는 춤사위를 벌인다. 뱅글뱅글 원을 그리며 웃음이 번지고, 배경에는 '아름다운 것'이 흐르고 있다. 


알코올은 사람에게 당연히 뭔가를 (이성,판단력 같은 걸로 말해지는) 둔화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분명히 뭔가를 일깨우기도 한다. 나는 춤을 즐겨추는 사람이 아니지만 그 날은 흥에 겨워서 웃음을 터뜨리며 춤을 췄다. 그 춤은 마치 태초의 인류가 추는 것처럼 원시적으로 기억된다. 그 춤을 내가 춘 것인가? 오히려 주체는 그 춤이고 나는 단지 참여자로서 최선을 다해 흐름을 따랐던 것 같다. 이 기억은 술취한 1인칭 시점과 함께 고정된 3인칭 시점으로 동시에 그려진다. 우리들이 서로 등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스텝을 밟고는 생겼던 춤의 원은 언니네 이발관의 노래가 만든 원과 몽환적인 조화를 만들어냈고, 그곳에는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이 담겨있다. 우리의 동작이 과격했는지 벽에 걸려있던 시계가 떨어져 멈춰버렸는데, 공교롭게도 그 시계는 원래 멈춰있었지만 파티에 참석한 다섯 명이 모이자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 신비로운 시계였다. 결국 시계는 파티만을 위해 잠시 움직였던 셈인데 그 시간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담겼는지?


다음 날 저녁 무렵 술이 거의 다 깨고 무심코 언니네 이발관을 틀었을 때 나는 어제 새벽 의문의 춤사위가 불현듯 떠올라 혼자서 큰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음악이 말도 안 되는 추억을 새겨놓은 것이다. 만일 그 음악이 없었다면 나는 그날 새벽에 일어난 일을 몽땅 잃어버렸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월이 더 지난 후에는 그런 날이 있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한 날이 왔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 음악을 들었고 춤을 추었다. 여기서부터 기억은 나의 소유물이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시공간에 머무른다.


요즘도 자주 언니네 이발관을 듣는다. 아직까지도 자주 웃음이 터져나오고, 그 날을 유쾌하게 추억한다. 나는 잠들기 전에 음악을 듣는다. 꿈꾸기 전에 미리 꿈을 꾸는 것이다. 그곳에는 바다가 흐르고 시계가 멈추며 외로움과 슬픔과 웃음이 뱅글뱅글 춤을 춘다. 영원히 그럴 것만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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