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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Oct 11. 2017

잃어버린 것

어라.

집을 나서며 습관처럼 자전거가 있는지 슥 보았는데 그 자리가 텅비어 있다. 불안감이 덮쳐오기 보다는 쓸 만큼 썼으니 후회는 없으나 누가 가져 갔을지, 어디에 있을지 궁금하기는 했다. 자전가를 훔쳐간 검은 옷의 누군가를 떠올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왜 하필 이런 허름한 걸, 의아했다. 그리고 짧게 만나다 얼마 전 헤어진 사람이 자전거 이렇게 막 두면 누가 훔쳐간다던 걱정도 떠올랐다. 그때 나는 말했다. 이 자전거 아무렇게나 둬도 훔쳐가지 않더라. 아마 아무도 안 훔쳐갈 꺼 같다. 그리고 내가 원체 물건을 잘 안 잃어버린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고집부렸다. 헤어지고 나자 이렇게 약속한듯이 사라지니 그 사람 걱정이 정말 이루어졌나 헛웃음이 나왔다. 그 사람이 이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도망가는 상상까지 들었다.


좀 더 걷다보니 며칠전 피씨방 간다고 대로변에 세워두웠던 자전거의 행방이 떠올랐다. 아차. 정신을 어따 두고 사는 거지. 피씨방을 갔던 게 일요일이었으니 벌써 3일 지났다. 습관처럼 슥 보던 자전거였는데, 습관마저 무색해지는 무관심이다. 하루는 아예 외출을 안했던 것 같다. 겨울은 집이 최고니까. 나는 아직도 자전거가 그 자리에 있을까 궁금해하며 조금 다급해져서 빨리 걸었다. 걷는 한편으론 물건을 원체 안 잃어버리니 당연히 있을 꺼라는 기대와 믿음이 여전히 자리 잡고있었고, 다른 한편으론 설마 정말 없어졌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일었다. 만약에 이 자전거를 잃어버린다면 나는 앞으로 애완동물은 절대 키우지 않기로 다짐했다. 또 아이도 낳지 않기로 다짐했고, 다짐은 이어져 결혼을 하지 않기에 이르렀다. 시들어가는 집안 식물까지 떠올랐다.


대로변으로 서둘러 내걸었으나 자동차가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었고, 하늘은 미세먼지가 잔뜩 껴 구름도 없이 흙빛으로 흐렸다. 내가 세워둔 자전거는 보이지 않았다. 하긴 이런 데 세워뒀는데 가만 있을리 없지. 인도로 들어오니 그제서야 반가운 자전거를 발견한다. 나는 그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자전거는 폐점된 건물 앞에서 외롭게 서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순간 이름까지 붙여줬다. 자전거가 그대로 있다는 기대와 믿음이 지켜져서 안도했지만, 충족되지 못한 불안감은 어쩐지 아쉬움을 남겼다. 그렇다면 삶은 이전과 그대로 이어져야 하므로


자전거 페달을 밟았고 집을 나서며 생각했던 목적지로 향했다. 겨울이라 잘 타지 않게 된 자전거였는데, 오늘은 바람이 그리 차지 않았다. 이제 곧 봄이 오면 자전거를 자주 탈텐데 안 잃어버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 곧 이사를 가면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위해 자전거를 많이 타야할텐데 다시 찾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한동안 많은 잃어버린 것들이 줄지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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