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단상

by 은한

영양적으로 더 균형잡히고 규칙적인 식생활을 하기 위해 고구마를 구입했다. 투잡할 때까진 매일 저녁으로 가게에서 고구마 2~3개를 삶아 먹기로 했다. 그리고 알바를 끝내게 되어 삼시세끼를 해결해야할 처지에 놓이면 아예 식습관을 뿌리채 바꿔보려고 한다. 최적화된 식단을 만들어 배가 고파오면 아무런 고민없이 뭔갈 섭취하는.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거는 결정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 옷을 단벌로 맞춰입던데, 난 아주 추운 날이면 선택권 자체가 별로 없어서 맨날 똑같은 거 입고 이제는 먹는 것도 걍 시스템을 만들어 결정의 수를 줄여야지. 마크 주커버거에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결정, 위대한 업무 따위는 치루지도 않지만 매번 선택해야하는 것이 귀찮고 피로한 건 또 사실이다.


음식은 주로 자연식이 될 꺼 같다. 견과류, 채소, 과일, 잡곡, 계란. 요즘들어 배달 음식이나 패스트 푸드, 인스턴트 식품을 너무 자주 먹었던 것 같다. 자연식은 사실 뒤엣 것들 보다 먹어야할 이유가 더 많다. 영양적으로, 시간-비용의 경제적으로. 좋은 영양은 신체로 내외부로 더 건강한 육체를 만들어주고 정신적으로도 더 맑은 기운을 준다. 고구마 3kg이 6300원이니 같은 값으로 시켜 먹는 돈가스 1인분보다 적어도 열끼는 더 챙겨먹을 수 있다.


문제는 맛과 먹는 재미. 먹는 재미는 쇼핑의 재미부터, 음식의 냄새와 비주얼을 보며 기대하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음식을 직접 입으로 넣어 맛을 보고 식감을 느끼는 것은 정말 재밌다. 식과 색의 생존-번식 본능을 추구하며 나온 쾌락. 거기다 인간은 불의 사용법을 익히고 요리 기술과 음식 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미각이 극도로 예민해지기에 이른다. 동물의 보편적 본능-쾌락에 인간 특화적 미각에 따라 하루에 세끼 먹는 것은 생존은 덤이고 오락의 의미가 더 크게 담긴다.


인류의 축적된 문화와 기술, 몇년간 가져온 식습관-삶의 관성을 뿌리쳐야한다는 것은 엄청난 인내와 절제가 필요하고 어쩌면 고통스러울지 모르나 삶의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내는 것도 유의미하다 생각하며, 이쯤 됐으면 인내와 절제도 한번 테스트해보고 싶고,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이유, 신체와 정신을 더 좋은 상태로 만들고 싶은 욕심 혹은 실험정신으로 3,4,5,6월을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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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식감이 문제라고 했지만, 어제 고구마를 하나 먹으며 재미난 체험을 했다. 장사를 하며 뭔가를 먹게되면 손님이 오지 않는 이상 먹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고구마를 한입 깨물어서 조각난 고구마 덩어리를 입안에 넣는다. 이 순간 내 시각은 흐려지고, 입안의 상황만이 시각적 상상으로 의식에 펼쳐진다. 고구마 덩어리는 이로 씹혀 더 잘게 조각나고 혀는 요란하게 조각난 덩어리들을 어루만진다. 또한 혀는 약간 크다 싶은 덩어리를 어금니쪽으로 내몰아주는데 혀의 드리블 능력과 엄니의 슈팅 능력은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협업이었다. 고구마 덩어리들은 점점 더 잘게, 거의 스프 상태가 되기까지 짓밟히고 아밀라아제의 범벅이 된다. 음식은 식도가 넘길 때의 식감 '꿀꺽'을 마지막으로 먹는 재미는 마무리된다.


여기서 아주 당연한 사실이지만, 굳이 인식하지 않고 살아서 알게 된 생소한 사실이 있는데 입안에 있던 음식물은 (이에 걸리는 걸 제외하고) 완전히 목구멍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입안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입안도 사실은 신체의 외부였고, 식도부터 항문까지 이어지는 장기들 역시 신체의 외부로 음식을 흘려보내는 파이프 같은 것이다. (도올 김용옥 선생의 노자와 21세기라는 강의에서 나왔던 내용이기도 하다.) 나의 무지한 체감에 의하면, 음식물의 일부는 혀의 내부 입안의 내부로 침잠, 아예 신체의 안으로 스며드는 것이었는데, 사실은 단지 혀의 표면에 튀어나온 유두의 안쪽 미뢰에 음식이 닿으면 미세포는 뇌에 정보를 보내 맛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뇌는 쾌락을 위해 입안에 음식을 담구고, 몸은 영양을 위해 음식을 장기로 보낸다. 입안에서 음식은 맛과 식감이라는 정보를 담아 뇌로 승천하고, 또한 영양을 담아 장기를 거쳐 똥으로 하강한다.


고구마를 씹으며 생각했던 인공지능 로봇이 있다. 음식을 그 로봇에 넣으면, 레시피와 조리법을 완벽하게 카피하며 맛과 식감 영양 같은 것도 한꺼번에 평가해주는 것이다. 근데 얼마전 인공지능에 대해 알아보던중 알게된 흥미로운 사실에 의하면 인간이 아주 쉽게 해내는 감각의 미묘한 인지 체계는 인공지능이 따라가기 정말 어렵고 요원한 일이라는 것이다. 수학이나 언어는 인간도 하기 어려운, 다른 동물들은 아예 할 수도 없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기호 체계라 엄청 넓게 본다면, 인공지능과 수학의 발명의 시기는 그리 멀지 않으니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는 말. 반면에 태초로부터 진화해온 생물,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감각의 세포들은 인공지능 차원에서는 극도로 진화하게 되었고 결코 따라잡기 쉽지않다는 것이다. 고구마를 씹으며 결론지었다. 그래 이건 만들기 존나 어려울 꺼야..


음식을 먹을 때는 음식 자체에만 집중해 현존하는 삶의 지혜를, 불교 책을 몇번 들여다보며 배운 적이 있다. 그렇게 하면 음식은 더 맛있어지고 섭취하게 될 영양도 더 풍부해진다는 것이다. 군대에서 종종 그렇게 해봤지만, 그렇게 하면 음식을 아주 길게 씹어야해서 다른 사람들 먹는 속도를 못 쫓아가 얼마 먹지도 못한 음식을 남겨야 할 처지에 놓였다. 장사를 하면서는 그걸 정말 원없이, 아니 내가 굳이 원하지 않았더라도 알아서 한다. 그렇게 집중해서 먹는 게 정말로 훨씬 재밌고 맛있기 때문이다. 고구마라는 소박한 음식으로도 먹는 재미와 맛까지 누릴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영양이 풍부해진다는 말은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반은 확실히 성공적이다.


사실 디지털이 삶에 침입하고는 삶의 아날로그에 완전히 집중할 일이 거의 사라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디지털 라이프에서 인간의 감각은 어쩌면 퇴화중인지도 모른다. 음식을 먹으며 음식 자체를 완전히 음미하면 깊은 맛까지 느끼는 감각을 회복하게 된다. 감각도 어찌보면 타이밍이다. 뇌가 정보를 완전히 흡수하느냐 다른 곳에 의식이 치우쳐 몇 프로 정도만 흡수하느냐. 결정적인 순간이 올 때는 뇌의 한 곳만을 활짝 열고 나머지는 되도록 닫아놓은 채 감각을 집중시키는 것이 삶의 재미를 북돋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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