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업무 외 회사생활

자기계발의 기회가 되었다

by Jaden

사장님은 영국계 백인 신사. 런던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파리에서 경영대학원을 마쳤다. 젊은 시절 근무하던 금융회사에서 뉴욕지사로 파견을 보내면서 뉴욕에 첫발을 디뎠다. 성공한 경영자의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월스트리트 저널이 운영하는 북클럽 프로그램을 운영할 정도로 문학 역사 특히 세계 역사에 조예가 깊은 분이다. 전 세계에 일어나는 일에 호기심이 많아 회식 자리는 항상 현 이슈에 대한 토의로 시작된다. 입사하고 첫 회사 회식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한국 재벌 문화가 한국사회에 미치는 구조적인 실태에 대해 꼬집으셔 나는 무척 당황했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주제였다.


그 후로도 사장님은 내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남한 인구수는 얼마나 되나?

한국 지역 체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지? 미국처럼 연방제 vs 주제인가?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로써, 북한의 실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 회사들의 회식 문화는 업무 효율성 증대에 기여한다고 보나?

식민지 시대를 거친 후세대로써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나?


등등 사장님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나는 뉴욕에서 국사책을 구입해 다시 읽었고 한국 관광청은 물론 국어 국립원 웹사이트에 들어가 한반도 지형, 넓이, 인구구성, 한글에 대해 공부했었다.


국사란 과목은 고등학교 내신을 잘 받기 위해 선생님이 나누어 준 프린터를 달달 외운 기억밖에 없다.

19년을 살았던 내 동네 주민 수도 모르는데 남한의 인구수를 알턱이 있나?


회사 상사로써 극도로 부담스러운 사장님, 그의 질문은 회식 자리에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게 만들었고 내 앞에 놓인 음식 한입에도 체하게 만들었다. 한동안 소화제를 달고 살았었다. 회사에서 생존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억지로 시작했던 한국 공부는 한국인이라는 말을 꺼내기 부끄러울 정도로 많은 것을 배우는 기회를 제공했다. 내가 태어난 나라.. 조국이라는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전 회사 매니저는 연예인 패션과 가십거리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아사이 베리를 먹고 살을 그렇게 뺏데?

레이디 가가 이번에 입은 드레스 디자이너가 누구지?

톰 크루즈 전 부인이 뉴욕 핫 요가 스튜디오에서 수업을 듣는데?

저스틴 비버 생일이 오늘이라는데?


등등 매니저와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퇴근길에 서점에 들러 연예인 가십 잡지를 구독했었다.


회사생활이란 업무만이 다가 아닌 거 같아..

실력이 다가 아니었어..


할리웃 가십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출근길/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할리웃 스타들 이름을 영어 단어 외우듯 부지런히 외웠었다.


나 참 애쓴다 그치?

우리 아버지 음력 생일도 매년 헷갈리는데 저스틴 비버 생일은 알지 내가. 잡지에 나오는 뉴욕 패션 세계 가십거리를 읽으며 아부도 실력이야...라고 애써 위로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때의 내 노력은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한국에서 달달 외워도 어떻게 사용해야할지 잘 몰랐던 수많은 영숙어를 가십 잡지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익혔고 할리웃 연예인들이 시도해서 유명해진 새로운 다이어트 방식은 3개월-6개월 후면 한국으로 넘어가 트렌드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십 잡지를 넘기며 국사책을 읽으며 한심하게 여겼던 내 지난날의 모습을 돌아보며 힘든 회사 생활이라 여겼던 일들이 지금 생각하면 모두 자기계발의 기회였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많은 돈을 내고 수업을 들어야 자기계발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내가 몰랐던 것을 새로이 배웠다면 그건 자기계발인 셈이다.


'관점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말처럼 회사에서 하기 싫은 일들을 할당받으면 '싫은 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잘 모르는 일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하고 그 과정을 즐기며 자기계발의 기회로 볼 것인가 --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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