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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홀로서기 시도

역세권인데 월세가 너무 저렴했어

by Jaden

기숙사에서 첫 3개월을 보내고 더 이상 머무르지 않기로 했다. 많은 도움을 받았던 룸메이트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뉴욕에서 살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학교 친구 한 명이 뉴욕에서 아파트 관련 정보가 올라오는 종합 웹사이트: craigslist.com에서 검색해 보라고 했다. 맨해튼 지도를 펼쳐 놓고 학교와 근접한 지역에 있는 아파트를 검색해 보았다. 맨해튼 다운타운 지역에는 방 없이 거실과 침실이 연결된 스튜디오 형태 아파트 월세가 250-300만 원 정도였다. 난 30만 원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주위 친구들에게 얘기했더니 하루에 30만 원이면 몰라도..? 어이없다며 웃어 됐다. 그땐 시세에 대한 감각이 없던 터라.. 여하튼 맨해튼 다운타운은 내 예산 밖이었다.


한국인 친구들 조언에 한국 종합 웹사이트: heykorean.com에서 아파트를 찾아봤다.

거실을 개조해서 방으로 만든 곳, 방 한 칸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곳 등 대부분 룸메이트를 구하는 광고였다.


부모님과 떨어져 자주적인 삶을 살아 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터라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맨해튼을 벗어나더라도 혼자 살아보고 싶었다.


그때 일본+미국 혼혈인 지인이 3개월 동안 자신의 스튜디오가 빌 예정이니 살아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다시 지도를 펼쳤다. 그 친구의 집은 이민자들이 많이 모여사는 퀸즈의 젝슨 하이츠(Jackson Heights)로 4-5개 지하철이 통과하는 번화가로 보였다. 무엇보다 월세가 저렴해서 계약하기로 했다.


택시를 불러 이민가방 두 개를 신고 45분을 달려 주소지에 도착했다. 이층으로 된 하우스(Single Family House) 개념의 건물에 앞쪽 본체는 일본에서 이민 온 가족이 살고 뒷채(?)에는 내 지인에게 세를 준 형태였다. 사이즈 450 sqt 에 애써 스튜디오라 부를 수 있는 크기였다. 지인에게 첫 달 월세와 보증금을 건네주고 돈거래에 대한 영수증도 받았다.


계약서도 써달라고 요구했다. 계약기간, 주소지, 월세 금액, 계약조항 등등이 적힌 소정의 양식을 서로 검토하고 내 지인도 나도 동의한다는 의미로 사인을 하고 계약서를 나눠 가졌다. 한국에서 문서에 도장을 찍는 다면 미국에서는 사인이 도장을 대신한다. 그만큼 사인의 위력이 크니 자신의 사인을 정했다면:


1) 문서를 꼼꼼히 검토한 뒤 조항에 동의한다면 사인하기

2) 사인은 자주 바꾸지 않는다


지인은 일본으로 떠났고 이민가방에 걸터앉아 방 안을 둘러봤다.

꿈에 그리던 혼자 살기 소원을 이룬 거 같아 안도감이 밀려왔다.


근데 곧 가스레인지 주위에서 가스가 세는 것을 감지했다. 그 특유의 냄새가 흘러나왔다. 한밤중에 주인집에 달려가 가스가 센다고 말했다. 폭발하면 어떻하냐고..!! 이리저리 확인해 보던 일본인 할아버지는 자기는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내 코가 이상한 거라 하셨다.. (아닌데.. 이 냄새가 맞는데..) 내가 예민해졌나 보다 라고 생각하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그것도 잠시..


따끔따끔한 이 느낌은 뭐지?


침대 위로 올라 온 바퀴벌레들이 내 등을 물어됐다. 주위에 널브러져 있는 책들로 바퀴벌레를 때려 잡기 시작했다. 빨라서 한 마리도 죽이지 못했다. 다음날 저녁에는 바퀴벌레가 귀속으로 들어가려고 해 경악하며 일어서려다 침대에서 떨어졌다. 벌레에 대한 공포감에 밤새 불을 켜 놓고 잤더니 주인집에서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고 자정 이후로 불을 꺼달라고 했다. 야박하시다고... 생각했다.


더 큰 문제는 비만 오면 전기가 나가는 것이었다. 저지대라 그런가? 비만 오면 전기가 켜지지 않았다. 중세 시대도 아닌데 밤이면 초를 켜고 더듬더듬 벽을 짚어 화장실을 가는 날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뉴욕시 NYPD 경찰관이 문을 두드리며 나와달라고 했다. 도난 사고에 대해 조사 중이라는 2 미터 넘는 체구의 경찰관들의 모습에 조금 당황했다. 집 바로 옆에 작은 빨래방이 있고 그 뒤로 골목이 있다. 우리 동네에 사는 멕시코인들이 그곳에 자주 모인다고 한다. 나는 이사 온 지 얼마 안돼 아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신분 확인을 해 달라고 해 여권을 보여 주었다. 무전기로 연락해 보더니 협조해줘서 고맙다며 떠났다. 지하철 역에서 내가 사는 스튜디오는 걸어서 15분 거리. 경찰이 다녀간 후 밤늦게 집에 올 때면 등에 식은땀이 흘러 셔츠가 흠뻑 젖고는 했었다..


비만 오면 전기가 나가고

가스도 세고

바퀴벌레가 난무하는이 집


3개월 후

재계약을 하겠냐는 지인의 말을 단칼에 거부하고 이사 나왔다.


나름 역세권인데 월세가 너무 저렴하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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