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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쓰레기통에 버려진 김치

우리는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by Jaden

다시 이민가방을 주섬 주섬 택시에 싣고 맨해튼으로 이사 왔다. 이번에 살게 된 지역은 59가 콜럼버스 서클(Columbus Circle). 이곳은 센트럴파크(Central Park)가 시작되는 입구, 재즈클럽, 도널드 트럼트 인터내셔녈 호텔, 유기농 식재료를 파는 홀푸드(Whole Foods) 마켓 등 업스케일 시설들로 둘러싸인 번화가이다. 블락마다 스타벅스와 유명 프렌치 베이커리가 있어 걷다가 지치면 잠시 들려 다리를 쉬게 할 수도 있었다. 혼자 구경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볼 것이 너무 많은 곳이었다.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 아주 잠깐

고요한 새벽 거리를 산책하며 차분한 뉴욕시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화려한 조명이 켜지는 저녁이면

어딘가로 돌진하는 뉴요커들이 즐비하는 뉴욕시의 역동적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번에 함께 살게 된 룸메이트는 크로아티아에서 온 30대 초반 금발의 여성. 당시로부터 3년 전 오페어(Au Pair) 비자를 받아 뉴욕으로 건너왔다고 했다. 미국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봐주고 그 대가로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는 문화교류적인 차원의 비자라고 했다. 남는 시간에 영어 수업도 수강할 수 있고 가끔 여행도 다닐 수 있어 크로아티아에 살 당시 또래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비자라고 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금발에 반짝이는 파란 눈. 친절해 보이진 않았지만 그때 당시 나는 별 요구사항이 없던 터라 그녀와 1년을 살아 보기로 했다.




이탈리안 스타일의 Pre-war 빌딩..... 특이한 집 구조에 끌렸었다.


거실 겸 주방 겸 욕실이 한 공간이고, 긴 직사각형 공간이 벽을 사이에 두고 나누어져 두개의 침실이 있었다. 여기서는 railroad (기찻길) 구조의 집이라고 부른다. 아침에 일어나 요리를 할 때면 금발의 룸메이트가 바로 옆에 있는 욕조안에서 샤워를 하는 오묘한 일이 벌어졌다. 특이해서 좋았다.



뉴욕에서 2년쯤 되었던 시점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밥과 김치가 그리워져 한인타운으로 걸어 내려가 김치와 밥솥을 샀다. 김치는 썰어 냉장고에 넣어 두고 쌀은 깨끗이 씻어 취사를 누른 후 근처 우체국에서 볼일을 보고 집에 돌아왔는데 어느 새 김치도 밥솥도 사라졌다.



금발의 룸메이트는 김치와 밥 냄새를 견디지 못했다. 냉장고에 썩은 야채를 두면 어떡하냐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김치를 쓰레기봉투에 두 겹 세 겹 싸서 밖으로 달려 나갔다.


붙잡을 틈도 없이.


냄새가 심하다며 건물 밖까지 뛰어나가 거리에 있는 휴지통에 내다 버렸다. 밥 냄새도 화장실 냄새 같다며 다 지어진 하얀 쌀밥이 든 밥솥을 신발장에 넣어두었다.



어떻게든 밥과 김치에 대해 설명해 보려고 했다.


건강한 발효 식품이라는 영양학적 접근부터 한국이라는 나라의 대표적인 음식이라는 등 그녀와 나의 문화적 차이적인 접근.. 어떤 관점에서든 그녀의 배려를 끌어내고 싶었다...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자기 집에 사는 동안 요리를 금하니 앞으로 삼시 세 끼는 외식하라고 했다. 자신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 둘은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1년.

동의했던 계약기간을 채우고 이사 나왔다.





그 이후로 새로운 집에 룸메이트로 들어갈 때는:

1) 살게 될 룸메이트에게 먼저 요리를 해도 되는지

2) 아파트에서 지켜야 하는 특별한 룰이 있는지 물어보고

3) 내가 동의할 수 있는 룰인지/ 아니라면, 서로 양보해서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지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 충분히 대화하고 심사숙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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