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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할렘에서 1년

나는 얼마일까?

by Jaden

크로아티아 룸메이트와 헤어지고 나서,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재미교포 동생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같이 살아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왔다. 그녀의 아파트는 스패니쉬 할렘(Harlem)에 위치해 있었다. 당시 낙후된 할렘을 재건한다는 소문이 한창 돌던 시기라 개발 지역으로 들어가는 건 나쁘진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다시 이민 가방을 질질 끌어 동생 차에 싣고 새 보금자리가 있는 할렘으로 달렸다. 한국 사람이랑 살게 되니 음식에 대한 문제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8층짜리 건물에 내가 살 곳은 6층. 씩씩 거리며 매일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눈치 보지 않고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어 행복했었다.


근데 매주 금요일 밤이면 술 취한 멕시코인 남자가 아파트 문을 발로 차며 울부짖었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 아모레, 아모레를 외치며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동안 발길질을 하다가 문 앞에 쓰러져 잠드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영어를 못하는 그

스패니쉬를 못하는 나 (말이 통해야 위로라도 해 주지....)


다음날 아침 널브러져 있는 그를 문으로 밀어내고 외출하곤 했었다. 103가와 렉싱턴 에비뉴가 만나는 지역을 스패니쉬 할렘(Spanish Harlem)이라고 부른다. 도미니칸 리퍼블릭과 멕시코에서 온 이민자들이 대거 모여사는 지역으로 흑인들의 주 거주지인 할렘 중심가에서 3블록 정도 떨어져 있어 할렘 치고 제법 안전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래도 어두컴컴한 스패니쉬 할렘의 분위기 탓인지 길을 나설 때면 자꾸 뒤를 돌아보곤 했다. 매일 밤 11시에서 다음날 아침 6시 사이 경찰관들이 순찰을 돌고 내가 사는 아파트 길 모퉁이에 경찰차 1대가 항시 주차되어 있어 그나마 밤 귀갓길에 안심이 되고는 했었다.


스패니쉬 할렘 중심부 거리



어느 날 지하철을 나와 아파트로 걸어가는데 경찰관 1명이 유리문을 스륵스륵 내리며 내게 물었다.


How much?

얼마?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 몇 초간을 멍하니 서 있다가 아무런 대꾸 없이 걸음을 재촉했다.


내가 몸을 파는 여자로 보였나? (집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 서서 생각했다...)

그 경찰관 말이 며칠간 머리에 맴돌았다.


1년 아파트 계약이 끝나갈 무렵, 같은 동네에 살던 한국인 여성이 흑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에 갔다가 총살당했다는 기사를 읽고 재계약을 하지 않고 나왔다. 다양한 인종이 평화롭게 살아간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뉴욕의 별명: Melting Pot


스패니쉬 할렘에서 오분만 걸어 내려오면 럭셔리 건물이 즐비하고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노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여기서 어퍼 이스트 (Upper East) 지역이라고 부른다. 반면, 내가 살던 동네 길거리에는 약해 취해 술에 취해 길에 쓰러져 자는 사람들이 많았다. 119 대원과 112 경찰들이 번갈아 가며 출동해 그들을 싣고 가지만 내일이면 같은 사람이 또 도로 한편에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다.


다들 이민생활로 힘든 걸까? 정신 질환을 안고 있는 건가? 매일 스패니쉬 할렘과 어퍼 이스트를 가로 짓는 그 경계선을 넘나들며 나와 저들을 구분 짓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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