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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독립적인 인생, 27살

by Jaden

어렸을 때부터 독립적인 인생을 갈망했다. 몇 시에 집에 오니? 누구 만나니? 어디야? 왜 아직 집에 안 오니? 등등.. 부모님의 잔소리가 들리지 않는 저 먼 곳으로 떠나 혼자서 이것저것 해보고 싶었다. 당당하게 떠나려면 자금이 필요할 거란 생각에 고등학교 1학년 때 동네 우체국에서 계좌를 열고 돈이 생기는 데로 저금을 했고 한 달에 만원씩 적금도 부었었다. 적금 만기에 찾은 몇십만 원. 내게는 참 큰 돈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돈으로 자취방 보증금도 낼 수 없었다. 어쨎튼 그때 당시 내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독립을 위한 모든 것을 치밀하게 준비했었다.



완벽한 독립을 위해 뉴욕으로 왔다. 여기까지 왔으니 부모님도 더 이상 내 인생에 간섭할 수 없을 꺼라 자신했다. 첫 3년 동안 가족에게 몇번 연락 하지 않았다. 그렇게 20대 초중반을 보내고 나니 어느 순간 갑자기 부모님에게 자주 듣던 '일어났니? 언제 오니? 어디야? 밥은 먹었니?' 하는 잔소리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부모님의 실루엣이 언제부터인가 마음속의 그림 한 폭이 되었다. 그동안 혼자 해결하기 버거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비자와 관련된 신분문제, 월가 금융회사에서 회사생활, 전 세계인들과의 인간관계, 능동적인 인간을 원하는 학교생활 등 나를 대대적으로 변화시켜야 하는 일들로 매일 휘청거렸다. 무엇보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누군가의 조언이 절실해졌을때 가장 먼저 생각났던 사람은 가족이었다.



27살 여름 - 생에 잊을 수 없는 몸살이 났다. 단순 감기인 줄 알고 개도 걸리지 않는다는 감기에 걸렸다고 자탄했었다. 월요일 아침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침대에서 눈을 떴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열은 나는데 몸은 으슬으슬 추웠고 숨을 쉴 때마다 뇌가 요동치는 것 같았다. 무슨 정신이었을까. 이빨을 꽉 물고 찬물에 샤워를 한 뒤 겨울용 패딩 잠바를 입고 출근했다. 그때는 오늘 일을 해야만 월세와 전기세를 포함한 각종 세금을 낼 수 있고 계획하고 있는 마이애미 여행 자금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부모님에게 금전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시기다. 사무실이 떠나가라 기침하는 내가 못마땅했는지 정오쯤 회사에서 조퇴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그렇게 일주일을 출근과 조퇴를 반복했다.



토요일 저녁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텔레파시가 통했던 것일까. 엄마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무슨 일이야?" 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걱정과 긴장감이 섞인 엄마의 목소리..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목소리였다. 몸살이 났다고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그 먼 타국에서... 내가 대신 아파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우셨다. 나는 사람에 대해 기대감이 없다. 나를 위해 눈물을 흘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숙연해졌다. 그 순간만큼은 뉴욕에서 삶을 정리하고 엄마 품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곳으로. 조건 없는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가족에게: 나는 많은 것을 의지해 살아가고 있었던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대신 아파주고 싶다는 엄마의 말을 통해 깨달았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가족도 나를 대신해 아파줄 수 없고, 회사에 나가 일 해 줄 수 없으며, 대인관계를 해결해 줄 수 없고, 학교 중간고사를 대신 쳐줄 수 없다는 것을. 사랑하는 내 가족들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일주일간 계속 되었던 몸살.

27살은 그렇게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20살이 되면 부모님을 떠나 독립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고 믿었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이런 의지는 똘끼나 누구에 대한 반항심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겪어야 할 첫 단계라고 생각한다.


나만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는 많은 장애물과 시련이 함께한다. 포기하고 싶어 질 때마다 여기까지 잘 걸어온 나를 칭찬하고, 누군가가 밀어 넘어지게 되더라고 다시 추스르고 일어나 전진해야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독립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 스스로에게도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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