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를 오는 가장 빠른 길은 자유로다. 자유로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의 끝은 임진각, 거기에서 몇 가지의 절차만 더 거치면 조금 더 올라가 도라산까지 갈 수 있다. 또 거기에서 몇 가지의 절차를 더하면 민통선 안의 마을에도 들어갈 수 있다. 그래봐야 거기가 끝이다. 하지만 도로표지판에서는 평양도 가고 개성도 갈 것처럼 직진 방향 표시가 선명하다.
처음부터 저 표지판이 있었던 건 아니다. 금방 통일이라도 될 것처럼 이벤트가 줄을 잇던 좋았던 시절의 어느 즈음, 갑자기 저 표지판이 등장했다. 처음 표지판을 봤을 때 정말 놀랐다. 믿기지가 않아서 가까운 나들목으로 빠져나가 돌아 나와 다시 통과했다. 그 뒤로도 저 표지판이 가까워지는 지점이 오면 허리를 곧추세우고 고개를 늘여 빼 앞을 향하고는 표지판이 눈앞에 다가오는 걸 기다렸다. 저 표지판을 바라보는 게 나는 참 좋았다. 다 좋았던 시절의 얘기다. 지금은 도로표지판에서 평양과 개성은 사라졌다.
자유로는 1990년부터 뚫리기 시작해 1992년에 성동 I.C 구간까지가 완공됐고, 2차 구간인 임진각까지는 1994년에 완공됐다. 노태우정부 사업이었다. 자유로변 오두산 전망대 부근이 '통일동산'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됐고 거기에 주택가가 형성됐다. 차차 임진각 가까운 문산에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정작 자유로를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자유로에 대한 이미지를 주도적으로 소비한 곳은 파주가 아니라 일산이었다. 자유로는 꽤나 충격적인 도로였다. 넓기도 넓었지만 한국의 지형에서 그만한 직선 도로가 길게 이어진 곳이 흔치 않았다. 무엇보다 자유로가 특별한 것은 그 풍경이었다. 지금은 행주대교부터 일산까지의 스카이라인이 많이 빽빽해졌지만 처음에만 해도 상당 구간의 스카이라인이 텅 비어있었다. 바라보는 시야의 팔 할이 하늘이었다. 좌측으로는 끝도 없이 너른 강이 이어진다. 좌우가 텅 빈 공간을 달리다 보면 저 끝에서 일산의 아파트들이 하나의 덩어리로 솟아올랐다. 그 풍경은 언제 봐도 비현실적이었다.
가장 극적인 건 해거름이 만들어내는 풍경이었다. 시간을 잘 맞추면 가는 내내 떨어지는 해를 보며 달릴 수 있었다. 노을이 장관을 이루는 날이면 사람이 풍경에 취해 황홀해지는 지경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런 독특한 경험들이 자유로의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자유로만의 서사를 만들어냈다. 자유로를 이름으로 내건 문화엘리트들의 모임도 꽤 만들어졌던 걸로 기억한다. 하위문화라고 놀지 못한 건 아니다. 자유로라는 공간이 주는 그 '낯선' 느낌이 '자유로 귀신'이라는 도시괴담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이제 자유로를 달려도 그런 느낌은 없다. 어떤 날, 운이 좋은 날에 노을을 만나면 여전히 황홀한 경험을 하지만 그 노을의 풍경 또한 예전만은 못하다. 무엇보다 늘 막히고 차가 많다. 도로가 꽉 차 있으니 시야가 좁아지는 건 당연하다. 자유로는 이제 그냥 도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막히는.
자유로의 옛 사진에는 평양이 있고 개성이 있다. 아직은 그래도 조국의 희망이나 꿈같은 걸 말해도 남세스럽지 않던 시절, 정치에도 역사에도 그나마 상상력이 살아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가 우리 세대의 낭만의 종점이었지 싶다. 나는 파주에서 그 시대를 건넜다. 좋았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