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즘이란 단순히 풍경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항상 풍경을 창출해 내야만 한다. 그때까지 실재로서 존재했지만 아무도 보지 않았던 풍경을 존재시키는 것이다. -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가라타니 고진
파주, DMZ가 지척이고 개성까지 20여 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오래된 도시에는 아직도 기지촌의 흔적이 남아있다. 운정신도시가 들어서면서부터 풍경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파주라는 도시의 성격도 바뀌고 있다.
처음 파주에 왔을 때,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황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살고 여행했던 어떤 도시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황량함이었다. 사람이 살다 다 떠나고 무인도로 변해버린 폐허 속도 걸어봤고 쇠락하고 버려진 오래된 마을에도 머물러 봤지만, 파주의 황량함은 사뭇 달랐다. 폐허로 변해버린 오래된 마을에서 느낄 수 있는 질펀함이나 끈적함 같은 것도 없었다. 뭔가로 채워져 있다가 다 게워 내고 난 빈 깡통 같다고나 할까. 빈 깡통 같은 풍경, 거칠고 단순했다. 애초부터 아름다움 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깡통 안으로 한 발짝만 들어가도 국면은 바뀐다. 깡통은 뭔가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대체로 난삽하다. 그 또한 다른 도시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어지러운 것도 아니고 더러운 것도 아니다.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그렇다고 묵은 것도 아니어서 금방 세워졌다 치워지는 가설극장처럼 낯설고 생뚱맞다. 거기에 있는 게 자연스럽고 거기에 있는게 마땅한 것 같은 건 파주에 없다. 발이 없는 것처럼 떠 있는 것들.
낯선 풍경은 불쾌감을 주는 동시에 그것을 기어이 해석해 내야 할 것 같은 강박을 남긴다. 그 강박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파주는 전혀 느슨하거나 편안한 곳이 아니다.
처음 내가 알기 시작하던 파주와 지금의 파주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처음에 내가 봤던 파주의 풍경 속을 걷는다. 도시는 멀리 있고 그곳에는 내가 아는 파주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