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파주

by UrsusHomo
벚꽃페부대.jpg 도시가 밀고 들어오면서 부대들도 많이 이전했다. 야산을 걷다 우연히 만난 옛 부대의 흔적.


몇 년 전 한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며 '파주'라는 단어가 포함된 닉네임을 사용한 적이 있다. 별 의도 없이 그냥 지은 닉네임이었고 올리는 글들은 파주와는 상관없는 글들이었다. 그런데 내가 글을 올리면 특별히 긴 답글을 달거나 디엠을 보내 각별함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올린 글의 내용보다는 닉네임에 포함된 '파주'라는 단어에 더 반응했다. 파주에서 군대생활을 한 사람들이었다. 나이는 오십대에서 육십대 사이, 남성들이었고 대부분 사병 출신이었다.


좀 놀랐다. '파주'라는 단어가 그들에게 그토록 많은 기억을 소환할 줄은 몰랐다. 그들이 기억하는 파주는 항상 추웠고, 황량하고, 을씨년스럽고, 배가 고프고, 외로운 것들과 연결돼 있었다. 간혹 부대 앞의 기지촌을 언급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표피적인 묘사였다. 때론 지명이나 기본 정보가 엉뚱하게 틀리기도 했다. 그들의 파주에는 구체성이 전혀 없었다. 뭉개지고 흐릿하고 모호했다. 흑백사진 속에서 어느 한 지점만 빨갛게 채색된 것처럼 주변의 것들은 모두 묻히고 자신이 말하는 지점만 선명했다. 어쩌면 그들이 알고 있는 파주도 딱 그 한 지점뿐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남성에게 군대는 낙인과 같은 인장을 남긴다. 십중팔구 그 기억은 대체로 끔찍하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파주에는 그런 끔찍함이 없었다. 춥고 배고프고 외롭고 황량한 파주인데 거기에 분노나 부정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애틋하고 낭만적이었다. 대놓고 파주가 그립다는 사람은 없었지만 나는 그들이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게 아닐까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세상에, 군대가 그립다니.


그들은 왜 그토록 '파주'라는 단어에 반응했던 것일까. 나중에야 그들이 기억하는 파주는 파주라는 공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곳에서 보냈던 한 시기였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들에게 각별했던 건 파주가 아니라 파주에서 보낸 20대 언저리의 한때, 그 시간이었다. 그들의 파주가 애틋하고 낭만적인 이유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그들이 기억하는 파주는 이제 파주에 없다. 도시가 밀려들어오면서 이전한 부대들도 꽤 많다. 파주의 야산이나 들판을 걷다 보면 옛 부대 터의 흔적들을 쉽게 만나곤 한다. 남아있는 흔적들로 가늠해 보면 시설의 규모가 의외로 작고 허술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그 좁고 남루한 공간 안에서 한 세대의 청춘이 흘러갔다.


지금도 여전히 파주에는 많은 부대가 있고 어린 사병들이 살고 있다. 지금의 사병들이 훗날에 기억하는 파주는 또 다를 것이다. 사병에게 군대는 여전히 춥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곳이겠지만 수십 년 전의 군대와 지금의 군대가 변한 만큼의 차이는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어느 봄날, 야트막한 야산을 걷다 조그마한 콘크리트 건물을 만났다. 페인트가 벗겨지긴 했지만 그래도 꽤 멀쩡했다. 유리창에는 조잡한 글씨로 '면회실'이라고 쓰여 있었다. 건물을 향해 구부러진 늙은 벚나무에 벚꽃이 만발했다. 철수하면서 유리창을 다 막아놓은 것 같은데 여기저기 떨어져 나간 곳이 많았다. 까치발을 하고 들여다보니 막상 그렇게 정성 들여 막아놓은 게 무색할 만큼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비었다.


그 시절 이곳에는 의자나 책상 몇 개쯤 놓여 있었을까?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파주에 오는 길은 아주 멀었다. 하루나 이틀이 걸려 먼 길을 돌고 돌아 찾아온 가족과 마주 앉아서 그들은 제대할 날짜를 꼽았을 것이다. 그 시절의 군대는 3년이었다. 3년, 무섭게 긴 시간이다. 그 무서운 시간을 뺀다면 파주가 어찌 파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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