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나의 글에 영원히 살아줄까
새벽, 잠이 오지 않을 때. 창을 살짝 열면 도시의 파도 소리가 들린다. 차들이 교차하며 스치는 묘한 소음이 바다를 만들어 낸다. 비릿한 새벽의 향과 선선한 바람. 그 상태로 눈을 감으면, 나는 한여름밤 해변가에 누워있다. 내 침대 모래사장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갑자기 내 옆에 누군가를 눕힌다. 뜬금없지만 내 새벽 감성의 흐름은 늘 이런 식이다. 종잡을 수가 없다. 불이 다 꺼진 방 안에서 나의 생각만은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생각의 늪을 헤엄친다.
옆을 힐끔거리며 지금 누구와 함께 누워있으면 좋을지 골라본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동시에 얼굴을 들이민다. 그러나, 지금 이 방안에선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을 테니, 모르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그 누군가와 나는 자취방 해변가에 누워있다. 한결 편안한 마음이 든다. 잘 모르는 이가 편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내가 상대를 모르니 애써 맞출 필요가 없고, 그 상대가 나를 모르니 정해진 이미지가 없어 나를 꾸미지 않아도 된다. 애써 불러낸 옆 사람에게 나는 말을 걸지 않는다. 그냥 단지, 혼자 바다를 느끼기엔 조금 외로워 옆에 둔다.
잦아드는 파도를 말없이 듣다가 침묵이 깨진다. 그러면 갑자기 내 옆 사람에게 얼굴이 생긴다. 결국엔 누군가가 떠오르고 만다. (그리움이 시작되는 시간은 항상 다르다. 그게 싫은 건 아닌데,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지금 그가 실제로 내 옆에 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 사실 그가 옆에 있어도 난 그를 추측한다. 사람들을 만날 때, 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볼 줄 모른다. 혼자 상대방의 마음속에 들어가 ‘무슨 말을 할 거야?’ ‘무슨 생각 하고 있어?’ 하며 다른 식으로 말을 듣는다. 현재 눈앞에 머문 이를 잘 알아주지 못한다. 그래서 이렇게 나의 새벽은 쓸데없는 짐작과 추측으로, 잠에 빠지지 않고 생각 속에 잠겨 버린다.
잠에 든다고 해서 나의 생각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난 매일 꿈을 꾼다. 꿈을 꾼다는 것은 수면의 질이 나쁘다는 뜻인데, 꿈이 마냥 싫지 않다. 꿈속에선 의외의 곳에 가며, 모르는 사람들과 애틋해진다. 꿈속에 나오는 사람 대부분은 내가 일상 속에서 스치듯 마주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기억나지 않아도 무의식 속에 사는 사람들인 셈이다.
한 번은 내가 학교를 가는 꿈이었는데, 학교에서 수업은 하지 않고 캠핑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친구들이 학교 계단을 썰매장 마냥 줄을 서서 타고 내려갔다. 꿈에서도 현실처럼 겁쟁이인 나는 머뭇거리며 내려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내 뒤에 서있던 여자아이가 나를 도와주었다. 덕분에 즐겁게 내려온 나는 “고마워. 잘 모르는데 도와줘서.”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여자애가 말했다. “아냐, 나는 너 알아. 주아잖아.” 그러며 나에 관한 에피소드 3가지를 말하곤 “난 희야. 희.” 이름을 알려주며 교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곤 잠에서 깼다. 사실 알려준 이름은 두 글자였는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누군가를 잊어버린 것 같아 뭔가 찜찜한 꿈이었다.
내가 살아오며 잃어버린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본다. 사실 성인이 된 나는 누군가를 꼭 잃어보고 싶었다. 어릴 적 내 곁을 영영 떠난 사람이 없어, 드라마에서 이별 장면이 나올 때마다 그 감정에 대해 궁금해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긴 했지만 늘 함께 지내던 사이가 아니어서 이별이 와닿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모든 절차를 마치고 고인을 묘지에 안장하던 순간, 아버지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울음을 토해내셨다. 아버지가 흘린 눈물에서 사랑이 보였다. 그때, 상실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느꼈다. 사실 이별 그 자체의 아픔을 느껴보고 싶은 게 아니고, 그만큼 애틋한 누군가를 원했던 것 같다. 나에게 아픔을 주더라도 그만한 행복을 주는 사람. 현재 너무나 어른이 된 나는 상실의 무게를 뼈저리게 느낀다. 만남과 이별은 세트이며, 그 대상에게 얼마나 많은 애정을 느꼈냐에 따라 아픔의 깊이가 달라진다.
이젠 새벽과 이별할 시간이 온다. 창밖의 색이 옅어지며 파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새들의 맑은 울음소리로 바뀐다. 그 뒤엔 서서히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로 가득할 것이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 끝나간다. 새벽은 새벽만이 주는 특별함이 있다. 행동보단 생각이 주가 된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새벽 감성’이라는 게 생겨나는 듯하다. 잠을 대가로 얻은 시간이니, 나는 아침에 잠이 든다. 언젠가는 일찍 일어나는 행복도 느끼고 싶다. 현재로서는 아침형 인간이 되기는 글렀다. 열어 둔 창문을 닫고 나는 생각이 아닌 잠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