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나의 글에 영원히 살아줄까
한 번씩, 귀에서 삐- 하며 이명이 들린다. 이 소리는 생명이 다할 때 나는 소리와 흡사하여,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 기억이 하나씩 단명하는 것 같은 의심이 든다. 요즘 들어 내 기억의 유효기간이 짧아졌다. 최근의 일일수록 기억의 디테일이 많이 떨어진다. 요즘의 나는 삶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집중력 바닥. 나의 기억은 더 이상 신선하지 않다. 냉동실 한편 오래전 넣어둔 식품처럼, 생산 일이 빠른 기억 만이 유효기간을 지운 채 나에게 붙어있다.
기억의 소멸만큼 시간도 빨리 지나가 버린다. 어른이 되면 어릴 때와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고 했다. 삶이 단조로울수록, 비슷한 패턴일수록 시간이 더 빨리 달아난다. 이러한 삶의 빠름과 더불어 어른이 되니 뭐든지 다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살게 되었다. 그래서 시간이 더 빨리 달아나는 걸지도 모른다. 어른이 빠른 것에 익숙해지는 이유는 아마도 단조로운 삶과 예상이 가능한 내일을 알고 있기에 무료한 시간을 넘기기 바빠서 일 것이다. 알 수 없는 미래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스포를 당하는 것처럼 내일을 알고 있다. 회색의 지하철에 실려 같은 곳에 내릴 것을.
어른이 된 나는 딱딱한 지하철에 앉아 수필 책을 읽는다. 어릴 땐 그림책을 주로 읽었는데, 그때 본 그림책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화려한 색상들이 가득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현재 내가 읽는 책은 표지에만 색이 있을 뿐, 본문을 대충 보아서는 내용을 알 수 없다. 온통 검고 각 질뿐. 삶을 보는 방식도 이와 비슷하게 바뀐 것 같다. 내 눈에 더 이상 흥미로운 색들은 보이지 않고 모든 게 꿍꿍이를 갖고 있는 듯 투명하게 보이는 것이 없다.
이런 나도 어른이 되었지만 그림책을 읽을 때가 있다. 주변 사람들 모두 각진 눈을 갖고 산문 책을 읽기에 나도 따라 읽는 것뿐. 왠지 어린아이의 전유물 같은 그림책 또한 어른이 만든 것임을 알면 사실 못 읽을 이유는 없다. 어른이 되어 처음 산 그림책이 있는데 ‘100만 번 산 고양이’라는 책이다. 독립서점에 구경을 하러 갔다가 그 책에 반해, 특별한 의미를 담고 싶어 월급의 첫 지출로 그 서점에 다시 들러 책을 샀다.
100만 번 산 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죽고 태어난 고양이의 이야기이다. 이 고양이는 임금님, 뱃사공, 어린 여자아이 등의 고양이로 환생을 했다. 매번 주인들은 고양이를 사랑했지만 고양이는 주인을 싫어했다. 삶과 죽음을 반복하던 어느 날, 고양이는 주인이 없는 자신만의 고양이로 태어났다. 그때 고양이의 앞에 하얀 고양이가 나타났고 고양이는 사랑에 빠졌다. 처음으로 사랑을 했고 처음으로 백만 번 죽어본 것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다. 어느 날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든 하얀 고양이가 세상을 먼저 떠났다.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를 안고 백만 번을 울다가 함께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다.
고양이는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다. 아마 기억이 지워지지 않은 채 환생을 하는 고양이는 슬픈 기억을 갖고선 다시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큰 틀로 놓고 보면 기억과 시간이 너무나 쉽게 사라진다 느끼지만, 그 안을 들여다볼수록 상처는 지독한 시간을 갖고 우리에게 있다. 돌이켜보면 나도 성장을 하며 상처를 넘기는 법을 익혀 기억이 점차 소멸해 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상처는 순간의 성장을 돕지만 장기적인 면에서는 성장을 막는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긴 이별에도 이러한 망각과 상실이 도움이 된다. 나는 고양이처럼 백만 번을 죽고 태어날 수 없지만 마음으로 그 사람을 떠나보내고 묻어 줄 수 있다. 그리고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다.
나는 오늘 새로운 일상에 새로운 기억을 새기며 걷는다. 한 번씩 영원 같은 상대를 만나고 지우기 싫은 감동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래도 기억은 조금씩 사라진다. 어쩔 수 없는 비워짐에도 채워지는 것이 있기에 상실에 대해 더 이상 슬퍼하지 않는다. 만약 고양이가 다시 태어날 결심을 했다면 고양이는 또 다른 사랑을 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색이 바랜 기억에 더 이상 덧칠을 하지 않고 기억과 시간을 잃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