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9월의 날씨처럼
(어른스러운 것)

- 누가 나의 글에 영원히 살아 줄까

by 두아두



당신은 9월의 날씨처럼





지금은 9월. 날짜를 확인하니 벌써 9월 중순이다. 손가락을 펼쳐 수를 세어본다. 9월, 10월, 11월, 12월. 올해 남은 달은 펼친 손을 다 접으려 해도 하나가 남는다. 지나간 달도 세어본다. 1월… 8월, 9월.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넘기며 세어보니, 또 손가락 하나가 남는다. 접히지 않는 손가락 하나. 무언가 미완성의 애매한 날에 놓인 것 같다.


날씨마저 애매하다. 볕은 뜨거운데 바람은 차갑다. 어떠한 이유는 댈 수 없지만, 나는 벌써 9월이라고?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정직하게 흐르던 세월은, 나의 느린 걸음은 무시한 채 제 갈 길을 갔다. 하지만 세월을 자각했어도 난 그 세월과 발맞춰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모두에게 똑같이 부여해 준 나이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현재 내가 발을 들인 세계에서 나는 조금 아니, 누가 보면 좀 많이 세월을 따라가지 못한다 여긴다. 그것이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라면 나는 과도기에 있거나 영영 도태되는 쪽을 택하는 중일 지도 모른다.


어른스럽다. 사전의 풀이에 의하면 ‘나이는 어리지만 어른 같은 데가 있다.’ 나이가 있는 사람에게는 쓰지 못하는 말이다. 나는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어른스럽다 혹은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말을 듣는다. 생물학적 나이로 진짜 어르신이 된다면 나잇값을 못한다는 말을 듣게 될까. 나이의 값이라는 게,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것일까. 그 값에 맞는 지불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 걸까. 누군가 그랬다. 나이는 누구나 먹는다고 특별한 게 아니라고.


현명한 사람, 침착한 사람, 감정적이지 않은 사람. 내가 성인이 되고 보았던 어른스러운 사람들의 모습이다. 누구는 사회를 알고 경제관념이 있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말했다. 현명하고 침착한 사람이 경제관념이 없을 수도 있고, 사회를 알고 경제관념이 높은 사람이 매사에 감정적일 수도 있다. 그러면 누가 더 어른스럽다고 할 수 있을까. 기준의 명확성이 없어, 어른이라는 안내판을 세우고 줄을 세운다면 모두가 어른이라며 같은 곳에 서 있지 않을까. 애매한 9월의 날씨처럼 그 기준도 사실 애매한 것이다. 어른이 맞다 아니다를 속단하듯 말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9월의 날씨처럼 말씀하시네요라고 전하고 싶다.


나는 감정을 너무 표현하지 않아, 어른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지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반대로 20살을 넘기고 많은 사람과 상황을 겪으며 내 감정을 모두 표현하고 살았더니, 넌 너무 감정적이야 어른스럽게 행동해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중간을 지키지 못한 탓인 건지 어른스럽다는 것에 알맞은 사람이 되는 건 너무 어려웠다. 상대에 따라 내가 너무 달라지기에, 사람들은 매번 나를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했다. 현재의 나는 그냥 부서진 채로 있고 싶다. 그래서 어른스럽기를 포기하고 싶다.


윤용인의 어른의 발견이라는 글의 일부를 봤다. 사랑에 관한 글이었다. -‘나 다시 청춘으로 돌아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제발’이라는 단어를 쓸 줄 아는 사람을 사랑할 것이다.’ 첫 문장의 제발이 무엇을 뜻하는지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제발? 그만하라는 말인가? 제발이라는 말이 두 번째로 발음되기 전에 이어서 문장을 읽는다. -‘너를 만나기 전의 사랑은 간섭하지 않겠다는 관용보다 그 과거에도 질투의 눈빛을 반짝이는 사람을 사랑할 것이고,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는 냉정의 논리보다, 너는 내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이를 사랑할 것이다.’


제발. 그만하라는 말이 아닌, 멈추지 말아 달라는 제발. 내가 아는 어른스러운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니다. 사랑에 얽매이지 않고 각자의 삶을 중시하는, 사랑은 별게 아니라는 태도를 지니며 사랑해야 하는 것. 작가가 저것이 어른스러운 사랑이라고 말한 건 아니지만 자신의 청춘을 돌이켜볼 때 저런 사랑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느껴졌다. -‘밀고 당김의 계산보다 가슴이 탄식하는 대로 제발, 제발이라 신음하는 사람을 죽을 때까지 사랑할 것이다.’


내 사랑은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여겼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어린것이고 똑똑하지 못한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못마땅함은, 참는 것만 늘어나게 했고 참는 건 언젠가 터졌다. 잠을 참으면 어느새 눈이 감기고, 배고픔을 참으면 꼬르륵 소리가 난다. 그래서 참기만 한 사랑은, 감은 눈 사이가 늘 축축했고, 침묵하는 나의 입과 달리, 행동들에서 비명 같은 고백이 터져 나왔다. 그러곤 사랑한다는 말이 날카로운 가시를 달고 태어나 나와 상대를 찌르기 시작했다.


어른스러운 게 삶의 방향을 따질 때 옳은 길만을 제공해 주는 건 아닌 것 같다.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면 무엇이 좋은 것인가. 어른스러운 사람은 무엇인가. 나는 답을 정할 수 없다. 아직 나는, 앞서 말한 과도기에 놓여있고 어리지도 나이 들지도 않았으니 인생의 장점을 야금야금 주워 먹으며 나의 부서진 형태에 틀을 조금씩 갖춰갈 것이다. 대신 정답이라는 게 없으니 나의 뼈대를 세울 기준 하나를 세운다. 내 사랑을 눈치 보며 하지 않을 것이고, 내가 생각해도 어리숙한 부분은 고쳐나갈 것이며, 남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을 것이다. 결론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후회 없이 살아야지.

keyword
이전 08화나의 불안만 현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