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나의 글에 영원히 살아 줄까
나도 모르는 새 또 멍이 들었다. 왼팔에 작게 물든 멍은 언제 생긴지도 모르겠다. 늘 원인 모를 멍을 몸에 새기고 다닌다. 이왕 생길 거라면 타투처럼 본새가 나면 좋으려 만. 다른 사람이 본다면 혹시 누가 괴롭히니?라고 물을 것이다. 피부색과 대비되는 보라색의 멍은 색이 진해 단번에 눈에 띄지만 아픔까지 진하지 않다.
사실 이렇게 뚜렷한 얼굴을 갖고 있는 상처는 아무렇지 않다. 약을 바르거나 가만히 두면 스스로 회복할 테니까. 내가 쉽게 회복하지 못하는 것은 정신적인 상처이다. 누군가 나를 찰싹 때리는 것보다 (물론 때리는 것도 너무 싫다.) 너 미워하며 모진 말을 던질 때, 나는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이렇게 제멋대로 생기는 멍들이 혹시 마음의 상처가 밖으로 나와 보이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만큼 멍이 자주 들기 때문에. 그만큼 자주 말로 상처받기 때문에.
자신이 받은 상처로 인해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고, 그 상처를 보상받듯 남의 가슴에 똑같은 상처를 찍어 내는 사람이 있다. 나는 허허실실 웃으며 상대의 행동을 잘 받기 때문에 상처를 주는 사람들의 타깃이 된다. 학교를 다닐 때부터 남학생들이 괴롭혀 우는 날이 많았다. 이후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와서도 남학생들이 그대로 자란 것인지 똑같이 괴롭히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사람이 말을 안 하면 못 하는 줄 안다. 나는 주로 상대의 말을 듣는 편인데 그들은 그것을 또 다른 먹잇감 삼아 나를 다시 놀린다. 그런 사람들은 말의 절반 이상이 알맹이가 없는 비난이거나 비꼬는 게 전부라 그 유치한 대우에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말을 저절로 아끼게 된다. 물론 표현이 서툴러 저런 식으로 애정을 보이는 걸 알지만 그것이 지나친다면 더 이상 애정이라는 말로 포장이 될 수는 없다.
나는 나의 상태를 늘 차분하고 기분 좋게 유지하려 한다. 내가 기분이 나쁘면 상대를 나쁘게 보고, 내가 기분이 좋으면 상대도 좋게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알게 된 C는 나의 평온한 행복을 묘하게 거슬려했다. 세상의 어두운 면을 가득 봤다는 C는 내가 보는 밝은 세상이 전부가 아니며 언젠가는 어두운 세계로 끌려 들어갈 것이라 경고했다. 나는 이미 나의 어두운 세계를 경험했고 그곳에서 나왔다고 말했지만 C는 그 말조차 못마땅해했다. C는 내가 화를 낼 것을 강요했고 감정을 유지하려는 나를 자극했다. 내가 그의 자극에 참지 못하고 원하는 말을 뱉을 때면 그는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내가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낼 때 웃었다.
C는 나에게 편하게 살아서는 안되고 자신만을 생각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불편하게 현재를 바라보고 남을 신경 쓰고 사는 그는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C와는 짧은 기간 꽤 많이 싸웠다. 마지막으로 싸웠을 때 내가 그에게 말했다. “넌 내가 행복한 게 못마땅한 것 같아. 내가 화를 내야 웃더라?” 조금 전 그에게 나의 불행을 설명하며 과거 이야기를 꺼내는 동안 그는 미소를 참고 있었다. C는 인정하듯 답했다. “맞아 네가 불행했으면 좋겠어.”
그의 다음 말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알고 있었지만 그가 나의 불행을 원했다는 말을 들으니 충격이었다. 나는 그가 아팠던 만큼 행복해지길 바랐다. 우리 둘은 서로 다른 것을 주려 했다. 그와 나는 그날 대화를 잘 마무리한 듯했지만 그 뒤에 곧바로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했고 난 그 자리를 떠났다. 이젠 서로에게 지친 것 같았다. 아니 내가 지쳐버렸다.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나의 안일함에 무력해졌다. 평소처럼 그를 이해하려 행동했다면 우린 그렇게 많이 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상하게 그와 있다 보니 내가 짜증이 많아지고 참을성이 없어졌다. 어떻게 보면 그가 원하는 대로 내가 변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별거 아닌 일에 내가 그를 그처럼 비난했다.
자신이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한 발짝 앞서 상대의 발을 밟아버린다. 그 상대가 자신에게 다가오기 전에, 자신을 밟아버리기 전에 겁을 먹고 공격을 한다. 상처는 다시 상처를 준다. 나도 그에게 상처를 받은 만큼 다시 상처를 줬다. 주변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C가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그만인 일이었다고 말했다. C는 나와의 일을 통해 무엇을 느꼈을까. 상처를 계속 덧나게 하며 남을 공격하고 있을까.
마음의 상처는 피부 겉의 상처처럼 사라지거나 흉터로 남지 않기 때문에 또 다른 나로 살아있다. 언제든 아프다고 소리 지를 준비를 하고 있다. 형태가 없기 때문에 잘 아물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아픈지 알기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나의 불행을 원하던 사람에게도 나를 함부로 대하던 사람에게도 지지 않고, 나는 상처를 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