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얼마 전 TV를 틀었다가 우연히 돌린 채널에서 경주 유적지 발굴 현장을 보았다. 그늘 하나 없는 땡볕 아래 흙바닥에서 사람들이 하루 종일 땅을 판다. 어른들이 흔히 '백날 땅을 파봐라, 10원 한 장이 나오나' 말 하지만, 여긴 정말 땅을 파면 뭔가 나오는 곳이다. 저 먼 신라시대 왕족의 무덤이 발굴되기도 하고, 서민의 집터가 나오기도 한다. 무언가 묻혀 있다는 확신도, 묻혀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지만 일단 발굴자들은 흙을 파 본다. 아니 땅을 판다기 보다 작은 솔 하나를 들고 발 밑 흙을 살살 파헤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신라시대 왕이 썼다는 금관이 나왔고 하늘을 나는 상상 속의 말 그림도 세상 빛을 보았다. 어느 왕의 무덤이, 왕과 귀족이 술잔을 기울이며 여흥을 즐겼다는 자리가, 오리와 기러기가 노닐었다는 연못이 지금 사람들이 호기심을 안고 찾아가는 유적지가 되었다.
사적(史蹟) XXX호.
사적이란 말 그대로 역사의 흔적이 남은 장소란 뜻이다. 이런 이름을 단 장소가 경주엔 차고 넘친다.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학창시절을 이 곳에서 보낸 내게 <사적>이란 그리 멀지 않은 이름이자 장소이다. 옛사람들이 걸었던 곳을 오늘의 내가 걷는다는 것은 기시감과 동질감, 그리고 낯설음이 한데 뒤섞인 묘한 감흥을 전해준다. 세상에 알려진 사적지는 그 시대의 권력자와 관련한 경우가 많지만 따지고 보면 그때에도 나처럼 보통의 사람들이 더 많이 살았을 것이다. 때로는 그들이 남긴 작은 접시나 기와조각, 숟가락 처럼 보통의 물건들이 그 시대를 연구하는 데 큰 열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한 번 이야기해 보고 싶어졌다. 보통 사람인 '나'의 '사적'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너무나 평범해서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을, 그러나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담긴 어떤 장소에 대해서 말이다. 작은 솔 하나를 들고 내 기억 속을 조심스럽게 훑어볼 생각이다. 거기엔 어릴 적 떠나온 내 고향집이 있고 이따금씩 부모님께 전해 들은, 내가 없던 시절의 그들의 장소가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라 남들 눈엔 아무 관심도 재미도 없을지 모른다. 그래도 언젠가 한 번은 기록해 보고 싶었던 것들이다. 이른바 '아주 사적(私的)인 사적(史蹟) 기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