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인왕동 <첨성대>
"정혜린! 이번에 경상북도에서 주최하는 백일장이 있다카는데 거기에 학교 대표로 출전한다."
두둥.
이것은 국어 선생님의 명령이었다. 내가 한다 못한다 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이미 나는 학교 대표로 선발이 되어서 학교장의 승인까지 받은 상태였고 백일장 당일은 평일이므로 학교 수업도 빠지고 대회에 참가하기로 결정되어 있었다. 나름 대회라고 얼마 되지는 않지만 출전 비용도 학교에서 지급해준다고 했다. 한 번의 거짓말이 불러온 후폭풍이 끝도 없이 밀어닥쳤다. 하나를 해결하면 더 큰 것이 몰려왔다. 그저 빨리 놀러 가고 싶은 마음에 친구가 지은 시에 내 이름을 달랑 적어서 냈을 뿐인데, 상을 타고 시 낭송 무대의 주인공이 되고, 이젠 학교 대표로 도 단위의 대회에까지 나가게 됐다. 대체, 이 거짓말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이제 어디까지가 내 진짜 모습인지 나 조차도 헷갈릴 지경이 됐다.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건가.
M을 비롯한 친구들도 황당해하긴 마찬가지였다. 부디 이번 대회에 나가서는 뭐가 되든 한 글자만이라도 꼭 쓰고 오라는 당부만을 남겼다. 뭐 별 수 있나.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고, 까짓 거, 그래. 한 번 가 보자! 일단, 공식적으로 하루 수업을 땡땡이 칠 수 있게 된 것도 나쁘지 않았다. 교내 백일장에서 상을 탄 다른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대회장에 도착했다. 운문과 산문중에 한 가지를 골라 역시 주최 측이 내어 준 주제어 가운데 한 가지를 골라 쓰면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글짓기 시간이 시작되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펜을 들고 종이에 무언가를 써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나처럼 눈알을 굴리고 머리를 굴리는 학생은 아무도 없는 듯이 보였다.
'하, 이거 이렇게 써도 되는 건가…?‘
그래도 짧은 걸 쓰는 게 낫겠지 싶어 운문을 선택했다. 머리를 쥐어짜내 꾸역꾸역 몇 글자 적었다 지우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이게 진짜 내 실력이라고 생각하니 창피해서 고개를 들지도 못하겠는 그런 작품이 완성됐다. 진짜 내가 쓴 작품을 본다면 선생님은 뭐라고 하실까? 너의 원래 실력이 고작 이 정도였냐고 혀를 끌끌 차시지는 않을까? 아니, 심사위원들은 이런 함량 미달의 글을 쓰는 학생이 대체 어떻게 출전을 했느냐고 생각하진 않을까? 나의 최초의 거짓말이 탄로 나는 건 이제 시간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창작이란 게 원래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이름난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해서 매번 엄청나게 멋진 글만 쓰는 건 아니듯이 나 또한 그렇다고, 하필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았다고, 그래도 저는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하고 말해야지 어쩌겠는가. 한 번 뻔뻔한 거 끝까지 뻔뻔하게 나가자! 일단 이 괴로운 자리만 빨리 피하고 싶었다. 그 때 무슨 주제어로 어떤 시를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빈 원고지 위에서 갈 곳을 잃고 헤매는 연필과 지우개의 서글픈 '밀당'만이 내 기억 속에 부끄럽게 남아 있을 뿐.
내 이름으로 작품을 써내고 대회는 끝났다. 작문이든 백일장이든 글 짓는 것과 관련된 것이라면 지긋지긋했다. 이제 모두 끝났겠지. 남은 것이라고는 기말고사 뿐이니까 이제 곧 2학기도 끝날 거고 방학을 할 테고 올해가 끝나겠지. 그런데, 얼마 후 국어 시간에 나는 또 한 번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됐다.
“혜린아! 경상북도 백일장에서 상 탔다고 연락이 왔네! 경주에서는 중,고등학교 다 통틀어서 제일 좋은 상을 받은 거란다, 야들아. 우리 혜린이 진짜 대단하제! 뭐하노, 다들 박수!"
세상에. 이건 또 무슨 일이람. 이번에도 정말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예에? 제가..요???"
그랬다. 내가, 내 작품이 상을 받았다고 했다. 참가상 같은 거 말고, 진짜로 실력이 좋아서 받는 상(賞) 말이다. 그것도, 선생님 말씀처럼 경주 지역에서 출전한 학생들 가운데 가장 좋은 상을 받게 되었다. 나는 또 한 번 월요일 아침 전교생이 모인 애국 조회 시간에 단상에 올라가 상장을 받았다. 우리 학교는 물론 경주시의 위상을 드높였다는 칭찬과 함께. 믿어지지 않았지만, 이건 진짜다. 진짜 내가 지은, 내 머리에서 나온, 내 이름이 붙은 시. 우연인지 필연인지 나는 또 한 번, 아니 이번엔 더 큰 성공과 진정한 성취의 기쁨을 맛보게 된 것이다!
이것은 내가 만든 기회일까, 아니면 훔친 것이나 다름 없는 도둑질의 결과일까. 전말을 모두 알고 있는 친구들도 신기해했다. 당연히 축하도 해주었다. 우선, 한 명도 배신하지 않고 의리를 지켜 입을 다물어준 친구들이 고마웠다. 사실 요즘 같으면 애초에 이런 '거짓말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모의고사 정답 하나만 잘못되어도, 수행평가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교육청에 민원을 넣네, 경찰에 신고를 하네 마네 하는 세상이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도 놀랐다. 솔직히 정말 기뻤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 해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고 다른 이들의 기대에 부응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그동안의 일이 전부 거짓은 아니었다는 걸 증명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한동안 어깨를 짓누르던 돌 덩어리를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그 후로 나는 당연한 듯이 '작문에 소질이 있고, 그래서 큰 상을 탄 아이'가 되었다. 나 또한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글 쓰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건 아니었다. 지루하기까지 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 우리 때만 해도 수능 점수만으로 지원하는 '특차'가 있었고 수능성적과 학생부 성적, 논술 점수를 더해 지원서를 쓰는 '정시'가 있었는데 나는 논술 준비하는 것이 싫어서 특차로 대입 원서를 쓸 정도였다. 논술 시험을 쳤다면 (소위 말하는) 조금 더 급이 높은 학교에 합격할 가능성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 정도로 나는 글에 딱히 취미가 있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그래도 취미, 특기를 적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특기 란에 '글쓰기'라고 아주 기계적으로 써넣기는 했다. 내게 글쓰기란 특기 란에 써넣기 좋은 적절한 단어 정도였던 것이다. 뭔가 있어 보이면서도 그 자리에서 당장 확인이 가능하지는 않은 딱 그 정도.
학창시절 학기 초가 되면 일괄적으로 조사하는 '장래 희망'에 나는 늘 '라디오 작가'라고 적었다. 그렇다고 꿈이 작가였던 것은 아니다. 글 쓰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사실 라디오 작가가 뭘 하는 사람인지도 잘 몰랐고 그땐 단지 라디오 듣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그렇게 적었다. 방점은 ‘작가’가 아니라 ‘라디오’에 찍혀 있던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게으른 건 매한가지여서 기자나 아나운서는 너무 바쁠 것 같아서 별로였고, 좋아하는 음악이나 느긋하게 들으면서(?) 연예인들이랑 노닥거리면서(!) 일을 하면 참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랬다. 라디오 작가라는 직업을 쥐꼬리만큼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전공을 살려 홍보대행사에서 일했다. 언론사에 보낼 보도자료나 기고문, 인터뷰 내용 등을 작성하는 게 중요한 업무이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작가'라는 직업과는 무관한 평범한 회사원이 되어 직장생활을 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진로 적성 검사를 하면 나는 무조건 '말'이나 '글'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인생이란 건 원래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인지 아니면 새하얀 도화지에 크레파스를 그어서 그어지는 대로 뻗어나가는 선 같은 것인지 나는 어쩌다보니 공중파 라디오 방송 작가가 되었다. 어린 시절 선망하던 것과는 딴판으로 음악이 거의 흐르지 않고 연예인 볼 일도 잘 없는 시사프로그램이 나의 첫 프로그램이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지금도 이렇게 '글'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걸 보면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던 학창시절의 진로 적성 검사의 결과가 영 틀리지만은 않은 셈이다.
역사에는 ‘만약‘이 없지만 인생(Life)에는 ’만약(if)‘이 있다는 말처럼, 생각해 본다. 열네 살 소녀였던 그 때, 그 한 번의 거짓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상을 타지 않았더라면, 더 큰 대회에 나가서 실제로 내 글을 써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정말로 내가 작문에 아주 조금의 재주와 적성이 있는 줄 몰랐을지도 모른다. 정직하게 행동해서 더 좋은 결과를 낳았을 수도 있다. 무심코 했던 나의 행동 때문에 예측할 수 없이 뻗어 나가는 결과에 두려웠던 그 때를 떠올린다. 하루 하루 꿈을 꾸는 밤이 아니라 길을 잃고 정처없이 헤매는 밤을 보내던 시절이다.
인생, 정말 아무도
모. 른. 다.
누군가는 경주의 첨성대를 보면 십 대의 수학여행이 떠오를 것이다. 연인과의 데이트를 추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게도 첨성대는 특별한 장소다.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이제는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추억을 간직한 장소. 지금도 가끔 경주에 들를 때 저 멀리 첨성대가 보이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