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 지하철 4호선 노원역
벌써 20년도 더 넘은 이야기다. 상계동에 살았던 것이.
2001년 2월, 대학 입학을 앞두고 한참 설레던 그 때. 단출한 짐 가방 하나를 달랑 들고 서울에 와 상계동 주민이 되었다. 이전 에피소드에서 서술했듯이 경주에선 '서울 사람' 취급을 받고 서울에 와선 '경주 사람' 취급을 받던 그때 얘기다. 지방에서 진학 한 학생들은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거나 근처에서 자취를 하거나 하숙을 하는 게 보통이었지만 나는 지하철로 통학해야하는 곳에 언니와 함께 살게 됐다. 언니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해서 이미 나보다 몇 년 앞서 서울 시민이 되었으므로 나는 대학 합격과 동시에 부모님 집을 떠나 언니와 함께 살기로 정해졌다. 입학식을 앞두고 오리엔테이션으로 강원도 속초에 가 있는 2박3일 동안 내 짐이 미리 상계동 아파트로 옮겨져 있었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학교에 오니 언니가 나를 데리러 왔다. 회기역에서 1호선 전철을 타고 창동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탄 뒤 한 정거장 다음 역인 노원역에서 내리면 되는 , 비교적 간단한 코스였지만 문제는 내가 눈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시력이 매우 나빠 안경 없이는 살 수 없는 내가 OT 마지막 날 밤 열정적으로 애교심(!)을 불태우다가 안경을 깨먹는 바람에 졸지에 말 그대로 눈 뜬 장님이 되고 만 것이다. 아직 입학식도 치르지 않았건만 OT를 다녀온 나는 이미 우리 학교의 피가 몸 안에 흐르는 걸 느꼈다! 사실 그건 뜨거운 알코올의 기운이었단 걸 곧 깨닫게 되었지만.
가뜩이나 서울 지리도 다 익히지 못했는데 안경까지 없으니 도저히 새 동네 새 집까지 혼자서는 갈 수가 없었다. 학교 정문에서 회기역 갈 때 까지만해도 대충 어디인지 알겠는데, 그 다음부터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눈앞이 흐릿해서 당최 뵈는 게 없었으므로. 나는 심봉사가 제 딸 심청이를 따라가는 것처럼 언니의 손을 꼬옥 잡고 집까지 갔다. 동생의 몰골에 언니는 혀를 끌끌 차면서도 여기는 무슨 역이고,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있고 어디서 환승을 해야 하고 환승 할 때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끊임없이 설명해 주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여기서 갈아타면 된다고."
"응, 알겠어."
모르겠다. 뭐가 보여야 말이지. 나중에 와 보면 알겠지, 뭐.
다음 날 안경을 새로 맞추고 나서야 알았다. 노원역은 꽤 번화해서 명동에서 봤던 미도파백화점(아직 롯데백화점으로 바뀌지 않은 때였다)이 여기에도 있고 옷 가게며 술집, 식당 따위가 많았다. 밤 늦은 시간에도 거리에 사람이 북적였다. 내가 살던 지방의 작은 도시의 가장 번화한 거리, 흔히 '시내'라고 부르는 곳 보다 여기 노원역 사거리가 더 복잡해 보였다. 노원역 주위로 우리 집과 비슷하게 생긴 주공아파트가 아주 많았다. 나는 7단지라 불리는 곳에 살았는데, 20년 인생을 줄곧 손바닥 만한 동네에서만 살아온 내가 본 가장 거대한 아파트촌이었다. 이런 아파트가 십 수 단지씩이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웠다.
집 베란다에서는 길 건너에 있는 고등학교 운동장이 보였는데 등하교 시간 마다 교문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가고 또 몰려 나오는 학생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게 꽤 재미있었다. '불과 몇 달 전 까지만 해도 나도 저렇게 너희처럼 교복 입고 등하교를 했었단다' 유치한 우월감을 느끼면서. 거실에선 저 멀리 지하철 4호선 선로가 보였다. 밤이면 선로를 따라 기다란 불빛이 오가곤 했는데 중랑천을 건너는 열차의 모습이 마치 '은하철도 999' 같다는 생각을 했다. 주위에 보이는 모든 일상적인 것들이 나에겐 새롭고 재미있어 보였다.
3월 입학을 하고 처음 혼자서 학교에 가던 날. 늘 드나들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교통카드를 찍고 플랫폼으로 올라가 열차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지금 회송행, 회송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손님 여러분 께서는 한 걸음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회송행? 회송? 이런 역이 있었던가...?'
언니는 분명 다음 역인 창동역까지 딱 한 정거장만 가면 되니까 방향만 잘 확인하면 아무 열차나 타도 된다고 했었다. 4호선 하행선은 '사당'이나 '안산', '오이도' 행이라는 걸 몇 번이고 미리 노선도를 보고 확인했던 터다. 급하게 노선도를 봤는데 어디에도 '회송'이란 역은 없었다.
'어? 이상하다? 회송이 도대체 어디야? 어떡하지? 지금 들어오는 거 타야 되나? 바로 다음이 창동이니까 이것도 가긴 가는 거겠지?'
지하철 안 타 본 촌놈 티를 내긴 싫어서 누구에게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에라 모르겠다, 잘못 타면 다음 역에 내리면 되지. 일단 타자!'
천천히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열차를 향해 자연스러운 발 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어? 어라? 왜 안 멈추는 거야...?'
열차는 속도를 줄여 멈추는가 싶더니 아주 천천히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타려는데 계속 앞으로 가는 건 또 뭐람.
정말 다행이었다. 열차가 멈추지 않고 그대로 통과한 것이. 문까지 열렸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열차를 탔을 것이다. 창동역이 아닌 '창동 기지'로 돌아가는 열차에 말이다. 지하철 공사 관계자가 아니라면 절대 탈 일이 없는 열차를 말이다!
그렇다. 회송은 역 이름이 아니다. 回送, 그러니까 돌아간다는 뜻이다. 창동에는 지하철 역만 있는게 아니라 지하철 차량 기지가 있었다. 운행을 마친 열차가 '회송'이란 이름을 달고 차량 기지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나도 이제 서울 시민이자 대학생이며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에 한없이 설레던 그 때. 그 설렘을 한순간에 아찔한 혼돈으로 바꾸어 버렸던 <회송행 열차>.
지금 찾아보니, 창동 차량 기지가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철거된다고 한다. 진접에 새로 건설되는 차량 기지로 업무가 이관되고 이 자리에는 대규모 바이오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하니 앞으로 노원역에서 더이상 회송 열차를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시력 교정 수술을 한 이후로 안경을 오랫동안 끼지 않아 한 때는 내 몸 같았던 안경이 너무 어색하고 이 불편한 걸 끼고 어찌 살았나 싶다. 창동 차량 기지도, 노원역 회송행 열차도, 내가 꼈던 안경처럼 그렇게 익숙함에서 멀어져 갈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게 더 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