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이야기#3
창가에 빗물이 송송 맺혔던 어느 오후에 야마모토 상과 나는 또 연애 이야기로 흘러갔습니다. 이야기의 발단은 교토 사람들이었습니다. 교토 사람들은 말을 할 때 꼭 상대를 생각해서라며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하지 않고 둘러서 얘기하니 들을 때 그 속뜻을 잘 알아들어야 한다고요.
"그냥 알아듣기 쉽게 말해주면 좋은데 말이에요~ 같은 일본 사람이라도 도쿄 사람인 나는 교토 사람들의 속내를 잘 모르겠어요" 야마모토 상이 말했습니다. "그러게요~ 사귀던 남자가 헤어질 때 [널 사랑하니까]라거나 [널 위해서 헤어진다]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요?" 내가 말했습니다. "그러니까요~ 다른 사람이 생겼다고 솔직히 말해주는 게 이쪽을 훨씬 위한 일인데.. 그렇게 둘러대는 핑계는 너무 싫어요"
야마모토 상이 한 톤 높여 말했습니다. "정말 그래요~ 남자가 헤어질 때 하는 말 중 너를 위해서, 너를 사랑하니까는정말 최악인 거 같아요!" 나도 살짝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근데.. 그것보다 더 최악이 있어요" 야마모토 상이 잠시 뜸을 들인 다음 말을 이었습니다. "그 게 뭐예요?" 내가 바로 다시 물었습니다. "사라지는 거요.. 갑자기 사라지는 거!" 야마모토 상이 내 눈을 보며 말했습니다. "네? 사라지는 거요? 어떻게요? 그런 경험 있어요?" 사라진다는 상황이 상상이 안된다는 목소리로 내가 물었습니다. "네.. 있어요" 야마모토 상이 짧게 대답했습니다. "네? 진짜요?? 어떻게요???" 나는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표정으로 되물었습니다.
"어릴 때 사귀다 헤어진 남자 친구와 15년쯤만에 재회해서 반 년 정도 다시 사귀었지요. 어느 날 우리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어요. 나는 그날 역까지 남자 친구를 바려다 주었어요. 그런데 그날 이후부터 갑자기 사라졌죠. 연락도 안 되고, 그냥 말 그대로 사라진 거요"
그때의 일들이 다시 떠올랐는지 야마모토 상은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그날의 상황을 자세히 말해주었습니다. "그날 저녁으로 스튜를 먹었었어요. 그전 날 종일 끓여서 만든 비프스튜였지요. 내가 정성을 다해 끓인 스튜를 먹고 사라진 거예요. 내일 또 만날 것처럼 인사를 했는데 그다음부터 연락이... "그녀는 살짝 찡그린 얼굴로 되뇌었지만,나의 웃음보는 그 순간 한 방에 터져버렸습니다. "말도 안 돼요~ 진짜 그렇게 사라지는 사람이 있다니... 왜 그랬을까요?" 나는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 다시 물었습니다. "모르죠.. 왜 그랬는지는.. 암튼, 남자랑 헤어질 때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게 최악임에는 분명해요" 야마모토 상은 힘이 들어간 강한 어조로 내게 말했습니다. "정말 그 게 최악 맞네요" 나도 그것이 최악의 최악임에 동의했습니다.
"그것도 그런데 예전에 야마모토 상이 말한 것처럼 생각할 것이 있으니 혼자 있게 해 달라고 했다던..
그런 말을 하는 남자도 좀 아닌 것 같아요." 이 건 예전에 야마모토 상이 자기 세계가 너무 분명한 남자는 좀 아니라며, 예전에 함께 동거했던 남자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갑자기 남자가 혼자 생각할 것이 있다고 집에서 좀 나가있어 달라고 했다고요. 그래서 그때 야마모토 상은 한국으로 하면 PC방 같은 데서 이틀 동안 머물렀다고 했었는데, 갑자기 그때의 이야기가 떠올라 내가 말했습니다.
"음... " "그 남자가 그 남자예요. 갑자기 사라진 남자랑 동일 인물이요!" 야마모토 상이 반쯤 웃음을 참으며 말했습니다. "네?? 같은 사람이에요??" 난 숨이 넘어갈 듯 다시 웃음을 터트렸고 우리는 함께 한동안 기절할 듯 웃었습니다. "사람은 안 변하나 봐요. 사랑은 변해도.. 뭔가 그런 분위기의 남자였어요" 야마모토 상이 말했습니다.
"그럼, 처음에 사귀었을 때는 어떻게 헤어졌어요?" 나는 갑자기 그 남자와 야마모토 상이 처음에는 어떻게 헤어졌는지가 너무 궁금해졌습니다. "그때도 비슷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전화로 이 집에 있고 싶은 만큼 있어도 된다고 하고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 남자의 집에 내가 들어가 함께 살고있는 거였거든요." 야마모토 상이 옛날 일을 회상하며 말했습니다. "네?? 그래서 그럼, 그 집에 그 이후로 혼자 있었어요? 그대로 헤어진 거예요??" 궁금하기도 하고, 조금 재밌기도 한 나는 "약간 신난 어조로 다시 물었습니다. "금방 나가려고 했는데, 또 혼자 있어보니 은근 편하고 좋더라고요.
그래서 그 집에 혼자서 3개월 있었어요. 결국에는 본가로 돌아갔지만, 그 사이 그 남자와 마주친 적은 없었어요. 그 남자와는 그 게 마지막이었지요.. 근데 왜 그러는지 이유는 안 물어봤어요" 야마모토 상은 조금 안정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랬군요..그래도 아무도 만나지 않은 것보다는 누군가와 이런 추억이 있는 게 훨씬 나은 거 같아요.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할 거리가 있으니까요" 위로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말로 마무리하면서도 왜 이리 웃음이 나던지.. 나와 야마모토 상의 올라간 입꼬리는 좀처럼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