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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사기 Mar 14. 2021

도쿄 일상

연애 이야기#2


비 내리는 하루였습니다.

빗물이 맺힌 창밖 풍경을 담은 사진이 

꽤나 많은 걸 보면요. 

오늘은 쌀쌀한 바람까지 더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다음 날 같은 기분이랄까요

괜스레 슬픈 노래를 찾게 되는. 


요 며칠 드라마에 빠져있어서  그런지 

마음까지 싸늘해지는 가을이라 그런지 

오늘은 어쩌다 보니 야마모토 상과 

연애 이야기로 흘러갔습니다. 

함께 일하는 야마모토 상으로 말하면 

나보다 2살이 많은 독신으로, 

야옹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혹시 비행기를 타거나 신칸센을 탔을 때 

아주 멋진 남자가 옆에 앉은 적 있나요?"

내가 물었습니다.

"아뇨...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어요"

야마모토 상이 대답했습니다. 

"그렇죠? 나도 그런 적은 없었어요.

그렇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면 

너무 좋을 것 같지 않나요?"

내가 말했습니다.

"그러게요~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없죠" 

야마모토 상이 이어서 말했습니다. 


"다음 달 오키나와 여행길에 

혹시 비행기 옆자리에 멋진 사람이 앉으면 어떡하죠?

오키나와행 비행기에서 혼자 여행하는 멋진 남자의 

옆자리에 앉게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내가 물었습니다. 

"아마도 0%겠지요. 

11월에 오키나와를 혼자 여행하는 남자라.. 

분명 0%일겁니다"

야마모토 상의 대답이 끝나기 전에

나의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그럼 교토행 신칸센에서의 확률은요? "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습니다. 

"11월의 오키나와행 비행기보다는 높겠지요" 

야마모토 상도 웃음을 겨우 참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럼, 12월 교토 출장 때 신칸센을 기대해볼까요? 

일단 창가 자리로 예약을 해야겠네요. 

그리고 통로 쪽에 멋진 남자가 앉으면 

일부러 화장실을 가는 척하며

 발을 살짝 밟고는 사과를 하는 거죠.

그리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캔커피를 사 와서 

명함과 함께 슬쩍 건네는 거예요. 

발을 밟은 것에 대한 사과로 저녁을 사고 싶으니,

도쿄로 돌아오면 연락을 달라고.."

신나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내가 말했습니다. 

"너무 적극적인 거 아닐까요?"  

야마모토 상은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내게 반문했습니다.  

" 첫눈에 반하는 남자를 만나는 일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다케노우치 유타카라고 생각해보세요.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잖아요.

앞으로 이런 일은 평생 없을지도 모른다고요" 


갑자기 신칸센 옆자리에 앉은 

상상 속의 그 남자는 

다케노우치 유타카가 되었고,

나는 첫눈에 반한 남자와의 우연한 만남을 

운명적인 만남으로 필사적으로 

바꾸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근데.. 

현실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다시 야마모토 상에게 물었습니다.

"아마도 거의 없겠지요.." 

야마모토 상이 냉정히 답했습니다.

"그렇죠? 그런 일은 없겠죠?

살아오면서 지금껏 한 번도 없었던 일이 

이제 와서 갑자기 일어날 일은 없겠지요.." 

나의 상상도 다시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둘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봄쯤이었을까요. 

아마 그때도 하늘거리는 봄바람에 

마음이 동해서 연애 이야기로 흘러갔던 것 같습니다. 

이 나이가 되면 만남의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고요.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요. 

한 발짝 용기를 내어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새로운 만남은커녕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요.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이 나이가 되면 세 종류의 독신이 있다고. 

첫 번째는 현실 연애 포기형, 

연예인처럼 현실에서 닿을 수 없는 

상대를 찾아 애정을 쏟고 에너지를 받는 스타일. 

두 번째는 5% 현실 연애 희망형, 

누군가를 만나면..이라는 몽상은 펼치지만 

현실에서의 액션은 아무것도 취하지 않는 스타일.

(그래도 이쪽은 현실적인 희망이 5%는 

있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는 애완동물 의지형,

혼자 사는 여자가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하면

그걸로 끝이라는 말이 있다 했습니다.

연애는 완전히 포기했다는 뜻이라고요. 


그리고 

이 세 타입 모두 결국은 무[無]라 했습니다.

고양이를 키우든, 

연예인을 좋아하든, 

연애의 몽상에만 빠져있든,

현실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결국은 모두 같이 무[無]라고요. 


"봄에도 무[無]에 대해 이야기하며 

 무[無]에서 벗어나자 했는데

가을이 되어서도 우리는 여전히 무[無] 군요"

내가 말했습니다.

"그러게요.. 

그저 시간만이 빠르게 흘러갈 뿐이지요" 

야마모토 상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고 다시 한참을 웃었습니다.

아주 조금은 씁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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