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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사기 Mar 24. 2021

끄적끄적

에피소드 하나, 동생의 티셔츠

재미난 일이 있었다며 남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이야기는 이러했다. 어느 날 인터넷 쇼핑으로 구매한 타미 티셔츠를 입고 출근길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서 자기와 비슷한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걸어오더니 버스 정류장에 멈춰 서더란다. 순간 설마 하며 다시 힐끔 그 남자를 봤는데 자기가 입은 것과  100% 똑같은 티셔츠 더란다. 버스 정류장에서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다니 별일 다 있다고 생각하며 애써 외면하며 버스를 기다렸는데, 그때 마침 버스가 도착했다. 이제 살았다 싶어 재빨리 버스에 올라타 뒤쪽 2인용 자석 창가 쪽에 앉았는데, 갑자기 버스 앞쪽에서 같은 티셔츠의 그 남자가 동생 쪽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하더란다.  동생은 갑자기 머리가 띵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빈자리가 동생 옆자리 하나뿐이더란다.

어떻게 된 상황이냐면, 아마도 그 남자분은 아무 생각 없이 버스의 마지막 남은 한자리를 향해 묵묵히 걸어갔고, 그 빈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본인과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어디로도 물러설 수 없이 그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는 황당한 장면.. 수도권에서 강남까지 자석 버스로 출근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미 만원인 버스에서는 어떻게 자리를 옮길 방법도 없을뿐더러 그렇다고 출근시간에 버스에서 내려 다음 버스를 탈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그 두 남자는 어쩔 수 없이 한 시간 가량을 그렇게 함께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커플룩처럼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버스에 나란히 앉아있는 두 남자의 모습도 너무 웃기지만, 그 황당한 장면을 아무렇지 않은 듯 서로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며 애써 외면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한 번 터진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분명 남남 커플 같은데 냉전 중인지 서로 말은 하지 않고.. 아니, 누가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모르는 사람이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우연히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 같은 버스를 탄 것도 모자라 옆자리에 나란히 앉게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를 전해주는 동생도 듣는 나도 말을 잇지 못하고 숨이 넘어가듯 웃었다. 동생에게 나는 "말이라도 걸어보지 그랬어? "라고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물으니 동생은 그런 상황에게 어떻게 말을 거냐며 그냥 모르는 척하며 스마트폰만 보고 있었는데 정말 창피해서 죽을 뻔했다며 그 이후로 그 티셔츠는 절대 입지 않는다고 했다.

살면서 자기와 같은 옷을 입은 사람과 같은 버스 옆자리에 나란히 앉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밋밋한 일상에 그 에피소드는 나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한바탕 시원하게 웃고 나니 가슴속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했다. 그 어떤 스트레스도 모두 물리쳐줄 것 같은 그런 큰 웃음, 가끔은 다른 그 어떤 것보다 이런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웃음이 삶의 활력소가 되어주는 것 같다. ​

어느날 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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