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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사기 Apr 01. 2021

오래 달리기

끄적끄적

#오래달리기

운동을 참 못하는 아이였다.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는 출발선에 서기 전부터 심장이 뛰어 미칠 것 같았고, 땅! 하고 울리는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에는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기록은 아마 20초를 겨우 끊는 정도였지 싶다.  오래 매달리기는 3초를 넘기지 못했고, 물론 승부욕도 없었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게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오래 달리기였다. 그때의 기억으로는 정해진 시간 안에만 들어오면 되는 거라 굳이 오래 달리기에 목숨 걸고 승부욕을 불태우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는지 100미터처럼 출발의 긴장감이 없어서였는지 이상하게 오래 달리기를 할 때는 마음이 편했다. 어느 날 2등으로 완주한 날, 나는 내가 어쩌면 장기전에 강한 아이일지 모르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결과가 금세 나오지 않은 일을 할 때 나는 가끔 오래 달리기 생각을 한다. 그리고 스스로 위로한다. 나는 지구력이 강한 사람이니까 하고.  그때의 오래 달라기는  100미터 달리기처럼 모두가 전력 질주를 하지 않는 종목이라 그저 포기하지 않고 뛰기만 한 나에게까지 운 좋은 결과가 온 것 일 거다. 그런데 다 알면서도 그 게 뭐라고 그때의 기억이 어른이 된 지금도 간간이 힘이 된다.


#6년개근상

어릴 적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집과 꽤 거리가 멀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이의 걸음으로 20분은 족히 넘은 것 같은데, 어린 내가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6년 동안 같은 등하굣길을 매일 오갔다고 생각하니 지금의 튼튼한 다리가 그때의 훈련 덕인가도 싶다. 그런 먼 학교를 지각 한 번 없이 6년 개근을 했다. 그건 나의 근면함이 아니라 나의 엄마의 오기 같은 거였다. 아파서 도저히 일어날 수도 없을 때가 몇 번이고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 먼 길을 엄마는 나를 업어서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끝나면 다시 나를 업고 집으로 돌아왔다. 요즘이라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결석을 하는 아이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도 같다. 암튼,  우리 집은 결석이나 지각을 하면 아주 큰일이 나는 집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아이에게 성실함만은 꼭 심어주겠다는 엄마의 소신이 아니었나 싶다. 아직도 학교가 끝나면 다시 엄마 등에 업혀 병원을 들러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꽤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때의 내 소원은 결석을 한번 해보는 거였다. 어린 마음에 모두가 학교를 갔을 때, 혼자만 학교를 안 가는 기분이 어떨까 하고 수없이도 상상했었다.


가끔 나의 장점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다 보면  6년 개근상이 떠오른다. 분명 온전한 나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성실한 기질이 어릴 때부터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뛰어나게 뭔가를 잘하지는 못해도, 마음먹으면 뭐든 성실히 이어갈 수는 있는 사람일 거라는 소소한 믿음. 그것은 엄마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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