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가정요리
#무말림1
어김없이 그 가게의 [무 말림]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작년처럼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낯익은 그 풍경 앞에서 발을 멈췄다. 그리고 몇 년째 변함없는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시간의 흐름을 되뇌었다.
늘 이맘때가 되어 문뜩 그 가게 앞의 무를 마주하면 나도 한번 말려봐야지 하고 생각만 했었는데.. 생각만 한 게 몇 년 만인지 드디어 내게도 무를 말리는 날이 왔다. 그 가게의 무를 따라 무 윗부분에 꼬치를 끼우고 그 양쪽에 실을 끼워 사다리 행거에 걸어 두었다. 원래는 찬 바람에 말려야 제맛이겠지만 일단 테스트로 실내에, 마음은 무 서너 개는 말려주고 싶었지만 혼자 먹기엔 하나면 충분하고 일단 테스트니까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근데 거실 한 편에 무 하나만 걸어놓은 모습이 뭔가 허하면서도 새초롬 귀엽기도 한 게 며칠 오며 가며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은 화분을 하나 놓아두고 꽃이 피는 걸 기다리는 마음이랄까..
#무말림2
꽃에 물을 주는 마음으로 곱게 말린 무로 드디어 무 절임을 만들었다. 매일 베란다 창가에서 햇빛 샤워를시켜주고 찬 바람을 맞혀주다 보니 어느새 무가 보기 좋게 말랐다. 무 절임을 만들기 전 얼마만큼 작아진 건지 비교해 보고 싶어 새 무를 사와 나란히 걸어 보았더니 왜 이리 귀여운지 잘 마른 무와 새 무의 바통 터치 시간이 마냥 즐겁고.
말린 무는 반으로 잘라 식감이 잘 느껴지도록 조금 도톰하게 썰었다. 다음은 따뜻한 물을 부어 깨끗이 씻은 후 물기를 빼주고.
소금, 식초, 설탕으로 넣고 잘 버무린 다음 얇게 썬 다시마와 페페론치노를 더했다. 간장이나 생강을 넣어도 괜찮고 먹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단 처음은 심플하게.
완성한 다음은 지퍼팩에 넣고 양념이 잘 베도록 납작하게. 무는 기호에 따라 말리는 정도를 조절하면 되는데 이 정도면 어느 정도의 꼬들거림일지 은근 기대된다. 그럼, 냉장고에서 잘 자고 내일 아침상에서 다시 만나는 걸로.
#무말림3
수제 단무지를 맛있게 먹기 위해 오니기리를 만들었다. 오니기리를 만들다 보니 도시락 생각이 났고
도시락 하니 달걀말이를 또 빼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집에서 먹는 도시락 세트가 되었다. 따뜻한 물만 부으면 되는 즉석 미소시루에 따뜻한 차를 곁들였더니꽤 그럴싸했다.
오니기리에는 미리 만들어 둔 대구살과 마른 새우 후리가케를 넣었는데 요건 오히려 밥과 잘 섞어 표면에 옅게 간장을 발라 야끼 오니기리로 만드는 게 더 맛있을 것 같다. 내일 아침에도 오니기리 바람이 불면 그때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구워주는 걸로.
마지막 메인이었던 나의 수제 단무지. 꼬들거림은 아주 완벽했고 맛은 단맛이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는데 부족함을 조금씩 채워가며 몇 번 더 만들다 보면 점차 나아질 것 같다.
그리고 하얀 물컵과 하얀 그릇은 작년에 공방에서 만든 것인데 내가 만든 음식을 내가 만든 그릇에 담는 기분이 뭐라 말 수없이 짜릿하다. 이 작고 하얀 그릇에는 어떤 음식이 어울릴까 하고 완성된 그릇을 보며 한참을 고민했었는데 이토록 수제 단무지가 잘 어울릴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