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기록
커피 드리퍼를 깨트렸다.
오랜 시간 함께한 애정 가득한 드리퍼는
쟁반을 옮기려던 내 팔에 부딪힌 후
몸을 크게 한 번 휘청이고는
곧바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났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몸체의 반은 그 형체를 남긴 채 옆으로 쓰러졌고
몸체의 반은 크고 작은 조각으로 부서지고 흩어졌다.
빛을 잃은 별처럼 잔잔히 흩어진 조각들,
살다 보면 이렇게 산산조각 나는 이별이 있다.
갑작스러운 이별이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놀라거나 절망하지는 않았다.
이 일은 온전한 나의 잘못이지만
나는 나를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아무리 자책하고 뒤돌아보아도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까.
아주 담담한 몸짓으로
마치 익숙한 몸짓으로
나는 조용히 바닥에 쪼그리고 않아
부서진 조각들의 하나씩 줍기 시작했다.
다음은 테이프와 소형 청소기를 가져와
위험 공간을 세심히 분리한 다음
한 부분씩 꼼꼼하게 파편들을 제거해 나갔다.
이럴 땐 바닥에 그어진 구분선들이 도움이 된다.
너무 멀리 보지 말고
눈앞에 보이는 곳부터 한 칸 한 칸 세심하게
칸을 채우 듯 제거해 나가는 거다.
그렇게 흩어진 파편들을 제거하다
산산조각 난 다른 이별들에 대해 생각했다.
어딘가엔가 여전히 존재할지도
어쩌면 이미 사라졌을 지도 모를
그 이별의 파편들에 대하여.
어떤 기억의 저편으로
가고 있었는지 몽롱하지만,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무의식적으로 손은 움직였다.
어느새 흩어진 파편들은
쓰레기봉투에 담겨
본연의 모습을 잃은 채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채
무의미한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다.
미안함과 감사함이 동시에 일렁였다.
오늘 아침까지
어제의 아침처럼
나를 행복하게 했던 너는
이제 내 일상 어디에도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하다
문뜩 떠올랐다.
드리퍼가 하나 더 있었다는 사실이.
나는 수납장 구석구석을 뒤져
똑같은 드리퍼를 찾아냈다.
그것이 일정 기간 애정을 쏟고
손때가 묻은 바로 그것은 아니라 해도
그것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
물건은 사람과 달라서
다행히도.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새 아이를 꺼내 들었다.
예전보다 훨씬 더 아낄 것이다.
차곡차곡 시간을 쌓아갈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