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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달콤하게/흐릿한날에/알차게

일상기록,

by 우사기

오후에,


눈이 내려도 창밖 풍경이

애써 궁금하지 않아진 걸 보니

이곳 생활도 이곳의 겨울에도

이제는 충분히 익숙해진 것 같다.

창 틈으로 흘러나오는

차갑고 청량한 공기가

의외로 기분 좋았던 오후에

모닝빵을 구웠다.

새롭게 시도한 레시피는

기대와 달랐지만

그래도 빵 굽는 풍경은

그 결과와는 무관하게

마음의 평온을 준다.

옅은 빵내음이

따사로운 오후였다.




달콤하게,


오늘의 제과 연습은 초코 타르틀레트.

데코에 쓸 누가틴을 만들어 놓고도

중간중간 집안일이 겹치는 바람에

해가 완전히 떨어진 후에야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레시피는 간단하지만

손이 많이 가고 섬세함이 요구되어

복잡한 레시피보다

오히려 더 신경 쓰였지만

또 그만큼 만드는 재미도 쏠쏠했다.

완성이 늦었지만

그렇다고 맛을 보지 않을 순 없지.

밤커피와 함께 달콤하게.




흐릿한 날에,


눈 내리는 흐릿한 날 오후,

낙지볶음 덮밥으로 가벼운 점심을 했다.

아주 매콤해 보였지만

다행히 예상보다 매움이 덜 했던,

야채만 살짝 더해 볼륨감만 살린

간편식 한 그릇이었다.

어제의 아이들은

발렌타인데이는 아직이라며

투덜대는 동생에게

반강제로 떠밀듯 안겨보냈다.

남은 아이는 오후의 휴식으로.

하얀 물고기 접시에 담았더니

꽉 찬 느낌이 은근 귀여웠다.

그러고도 또 남은 아이들은

하나씩 수납통에 넣어 두기로 했다.

그런데 넣고 보니

왜 이리 귀여운 거니.

괜스레 혼자 신나서

쪼르륵 위로 세워보기도 하고.


주인을 기다리는

자그마한 새처럼,

새장에 갇힌 새라 생각하니

갑자기 조금 안쓰럽네.

아무튼

나의 초코 타르틀레트는

그렇게 세 개가 남았다.




연습 중,


오늘의 제과 연습은

호두 초코 케이크.

오늘의 제일 큰 실수는 그라사쥬.

(실수라기보다 실패에 가까운)

온도 조절을 실패하는 바람에

농도가 짙어졌고 덕분에 보기 좋게

여백과 얼룩이 생겨버렸다.

이게 제일 큰 실수였다면

그 외 작은 실수도 많았다는 이야기.

그래도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낙오자 하나를 남기고

나머지 세 개는 어떻게든 실수를 만회하려 애썼다.

그리고 그중에서 그나마

제일 괜찮은 아이 하나를 골라

티타임을 가졌다.

티타임이라기보다는

반성회에 가까웠지만.


연습을 하다 보니 기억의 오류가 있긴 해도

예전에 배웠던 장면장면들이 되살아나

다시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다.

오늘만 해도 잊고 있던 중요한 포인트를

몇 개나 다시 되새겼는지 모르겠다.

제대로 만들었을 때보다

실수가 많을 때

배우는 건 더 많고,

아무튼

살짝 힘 돋는 하루였다.




알차게 ,


남은 생크림으로

조금 느슨하게 호두 타르트를 만들었다.

이번 주가 시작할 때 구매한

생크림 500ml를 남김없이 사용하고 나니

뭔가 딱 떨어진 느낌이 괜스레 기분이 좋다.

정작 발렌타인데이 당일이 되니

초콜릿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지만,

그래도 달달한 아이들이 끊이질 않으니

것도 기분을 올려주는 것 같다.

알차게 한 주를 보냈으니

주말은 온몸에 힘을 빼고

푹 쉬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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