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 여행
어둠이 내려앉길 기다렸다
후미진 골목길의 어느 재즈 바를 찾았다.
메뉴가 없는 곳,
홀로 가게를 지키고 있는
단정한 차림의 마스터와 마주하니
머릿속은 분명 논알콜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맥주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마스터는 병맥주를 아주 능숙한 솜씨로 딴 다음
잔 가득 채워주었다.
나는 감사의 눈짓을 하고 살짝 입술을 적셨다.
찬바람을 잔뜩 맞은 몸에 온기를 채워가며
천천히 카운터 안쪽의 술병들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 병씩 세기 시작했다.
내가 빠짐없이 병의 수를 세는 동안
마스터는 열중쉬어 자세로 꼼짝하지 않고
정면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내 쪽으로 시선을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쪽으로 시선을 준 것도 아니지만
서로의 시선 안에 서로가 들어있음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부동자세와 침묵,
그 사이를 잔잔한 지진처럼
재즈가 흘러내렸다.
어색하기 그지없는 거리감,
어느 한계점에 도달한 듯
조금씩 몸이 흐트러지기 시작핬을 때
두터운 문이 열리며
구세주 같은 다음 손님이 들어왔다.
나는 바통 터치라도 하듯
재빨리 코트를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사요나라.
밖으로 나오니
바에 들어갈 때만 해도
그토록 차갑던 공기가
그토록 상쾌할 수 없었다.
웃음이 멈추지 않았고
나는 그대로 조금 더 걷기로 했다.
처음엔 웃음이 났는데
분명 우스운 장면인데
걷다 보니 기분이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다.
기분이 가라앉으니 바람이 매서워졌다.
나는 호텔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계절을 쏙 닮은 쓸쓸함에
코트 깃을 몇 번이고 다시 감싸며.
다음날 밤은 망설이지 않고
소네로 향했다.
두 번째가 주는 작은 편안함,
그 편안함은 따사로웠고
그 봄날의 짧았던 감동을
다시 상기시켜주었다.
아,
다음에 고베에 오면
니시무라의 밤 커피를 즐겨봐야겠다.
이왕이면 화사한 계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