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 여행
아침의 이진칸[異人館] 스타바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엔 더없이 좋다.
적당히 편안하고 한적한 1층에서 주문을 마친 후
2층으로 올라왔다.
이곳은 고베 대지진의 피해로
해체될 예정이었던 목조건물(1907년 건축)을
지금의 자리에 재건 이축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의 소유주가 미국인이었다고 하는데
왠지 스타바의 분위기와 잘 맞는 것 같다.
분리된 공간의 이국적인 느낌이
여행 기분을 한껏 올려주고.
모닝커피는
아침 햇살이 흩어지는 창가에서 여유롭게.
점심은 지난번 여행에서 찜해두었던
[그릴 잇페이]를 택했다.
오픈 시간을 맞췄지만
워낙 손님이 많은 곳이라
운에 맡겨보기로 했는데
운이 좋았다.
내가 도착한지 5분도 되지 않아
긴 줄의 손님들이 한 팀씩 입장했고
딱 나의 뒷손님까지 1차 입장이 끝난 거다.
조금만 늦었다면
첫 손님의 식사가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꼬박 밖에서 기다릴 뻔했다.
대신 자리는 입구 쪽의 커다란 테이블을
칸막이로 나눈 합석 테이블이었지만
친절한 점원의 충분한 설명이 있었고
나에겐 기다리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더 괜찮은 선택이라
특별히 불만은 없었다.
내부 풍경이 한눈에 보이진 않았으나
소박하고 다정하고
오래되었지만 청결한 느낌은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메뉴는 심플하게 비프카츠를 택했는데
맛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메뉴를 조금 자세히 들여보고
사이드 메뉴를 추가했더라면 더 좋았겠다
살짝 후회하는 사이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한두 팀씩
가게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눈길이 나도 모르게 나가는 손님을 쫓다 보니
이미 길게 늘어진 가게 밖 손님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래,
이럴 땐 또 조금 서둘러주는 게 좋다.
(식욕을 자극했던 다른 메뉴들은
다음 여행의 즐거움으로)
맛있는 식사를 끝냈으면
이번엔 바다다.
지난번 고베역 근처에 머물 땐
산노미야가 볼거리가 많아 보이더니
산노미야역 근처에 머무니
이번엔 고베역 근처가
왠지 여유롭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모닝 스타바에 이어 런치 스타바까지.
똑같은 커피지만
달라진 창밖 풍경에
덩달아 커피 맛도 달라지고.
바다다.
파란 하늘이다.
좋다.
잔잔히 올라온 바다 기분은
결국 나를 바다로 향하는 전철에 몸을 싣게 했다.
거긴까진 좋았다.
급행이란 걸 알면서도
한 정거장이 이토록 길다니,
라는 생각 사이사이
이쯤이면 바다가 모습을 들어낼 때도 되었는데
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전철은 처음 보는 이름의 낯선 역에 멈춰 섰다.
나는 본능적으로 전철에서 내렸다.
그리고 곧바로 알게 되었다.
반대 방향으로 왔다는 것을.
고베역에서 30분도 멀어지지 않았는데
전철 배차 간격은 급속히 길어졌다.
목적지로 다시 가려면
출발지로 되돌아가야 하고
그러면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은
출발지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두 배로 늘어난다.
갑자기 바다는 나에게서 멀어졌고
나는 그냥 산노미야로 돌아가기로 했다.
배차 간격이 길어졌다 했더니
내가 타고 온 것은 사철이었다.
이럴 땐 이런 게
여행의 묘미라 생각하는 게
가장 마음이 편한 법.
그런데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여하튼
다시 사철과 JR비와코센의 환승이 가능한
아카시로 왔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자그마한 성.
그러고 보니 지난번 히메지 성을 가는 길에
이 작은 성을 본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는 역 밖으로 나와
성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역 플랫폼에서 바라보던 성은
굉장히 작고 가까워 보여
한 바퀴 돌아도 괜찮겠다 싶은
가벼운 마음으로 내렸는데,
근처로 가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공원 안에 있는 아카시 성은
의외로 거대했고 멀었다.
가까이 다가 갈수록 바람은 거세지고
까마귀 무리는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울음소리는 다가오지 말라는 신호음처럼 느껴졌다.
더불어 하늘까지 점차 구름으로 메워지고,
나는 성을 정복하고픈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재빨리 몸을 틀어 역으로 향했다.
비와코센에 올라타니
흐트러졌던 마음도 하늘도 다시 맑아졌다.
찬 바람을 많이 맞아 붉어진 볼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하자
창 너머로 바다가 모습을 들어냈다.
원했던, 가려고 했던, 보고 싶었던,
그 바다 풍경은 아니지만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창 너머로 스쳐지나는 바다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라고 위로하며)
아,
내가 포기한 풍경은
바다가 보이는 자그마한 역
혹은 자그마한 역과 겹쳐진 바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또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