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처럼
아침 산책을 나섰다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는 바람에 다시 집으로 방향을 돌렸다. 저쪽 하늘은 맑음인데 이쪽 하늘은 비가 내리는 신기한 아침.
돌아오는 길에 가정집 앞에서 무인으로 판매하는 파 발견. 100엔이라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상태가 너무 신선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부침개 생각을 하며 신나게 집으로 돌아왔지만, 생각해 보니 밀가루도 부침가루도 없다. 마트를 왕복하면 40분. 부침개를 머릿속에서 지우며 대파 두 개를 곱게 썰어 지퍼팩에 담았다. 이건 냉동실에 넣어두는 걸로.
쉐어하우스 이야기가 단풍 이야기에 밀리고 밀려 어디론가 흩어졌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밥을 지은 날이니 짧게 쉐어하우스 생활 이야기를 하고 가야겠다.
그동안 쉐어하우스에서의 식사는 말 그대로 대충대충. 그 와중에도 칼디에서 너구리와 짜파게티를 발견해 행복했었다. 이곳 쉐어하우스는 여성 전용 3층 주택으로 1층에 방 2개 화장실, 2층에 방 1개 거실과 욕실, 3층에 방 2개, 세면대와 화장실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내가 입실했을 땐 5명이 있었지만, 지금은 2명이 퇴실해 1층에 1명, 2층에 1명, 3층에 1명 이렇게 3명이 지내고 있다.
2명이 퇴실하기 전에는 가끔 각자의 저녁을 들고 와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는데 콤비니 음식들을 모아놓고 서로를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웃기도 했다. 적당히 친근하고 적당히 거리감 있는 생활이 나쁘지 않다.
쉐어하우스의 인원이 줄어 겸사겸사 대청소도 하고 나니 이제 밥을 좀 해 먹어야 하겠다 싶어 하루는 왕창 장을 봐왔다. 일단 요리를 한다기보다는 집에서 차려먹는다는 말이 맞겠다. 반찬은 바로 먹을 수 있는 간단한 것들로. 본격적인 요리를 하려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일단은 꼭 필요한 아이들로만 챙겨왔다. 그래도 이렇게 왕창 사놓으니 이제서야 생활감이 난다. 양념들은 모조리 자그만 아이들로 데려왔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모르겠다. 요건 제대로 갖춰지면 쪼르륵 줄을 세워봐야지.
그렇게 오늘 처음으로 쉐어하우스에서 (조금 느린 아침이긴 했지만) 식사를 했다. 교토에 올 때 쟁반과 젓가락 그리고 젓가락 받침만 가져왔는데 그래도 이 아이들이 있어 나의 밥상 느낌이 나는 것 같다. 그릇을 안 챙겨온 게 무지 아쉽지만, 일단은 이곳에 있는 아이들을 쓰기로.
전기밥솥이 밥을 짓는 동안 냉장고에 넣어둔 나의 소중한 양식들을 꺼내어 상을 차렸다. 참, 한국에서 우롱차와 홍차를 가져왔는데 요건 아주 잘 한 듯, 유용하게 잘 마시고 있다.
낫또와 명란젓 그리고 미소시루. 모든 것을 꺼내어 접시에 담은 것뿐이지만 그래도 집밥이라 생각하니 왜 그리 기분이 올라가던지. 쉐어하우스에 일본인 여자분이 계신데 요리를 아주 잘 하신다. 가끔 옆으로 가 무슨 요리인지 물어보면 설명을 잘 해주시는데 레시피들이 꽤 괜찮아 야금야금 꿀팁 챙기는 재미도 쏠쏠하다. 조리도구와 그릇 사고픈 욕구를 억누르며 일단은 이곳 생활에 맞춰 살아보기로 한다. 잘 챙겨 먹자 다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