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처럼
루리코인을 나와 오하라[小原]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이번엔 이 순서로 둘러보았지만, 이 코스를 끝내고 보니 인파를 피하고 싶다면 오하라를 먼저 둘러보고 루리코인으로 넘어오는 게 더 나아 보인다. 다행히 버스에서 내려 산젠인[三千院]으로 향하는 길은 한적했다.
덕분에 여유를 부리며 물소리를 즐겼고 물 위에 가지런히 내려앉은 단풍잎들에 시선을 맞추며 한참을 쉬어갈 수 있었다.
산젠인 입구 쪽까지 올라와 표지판을 보니 산젠인 호센인 말고고 둘러볼 곳이 의외로 많다. 예전 여행 때 길을 잃게 했던 출세신사도 표지판에 보였지만 이번엔 좀처럼 욕망이 들끓지 않아 그쪽은 다음번으로 미루기로 했다.
잠시 길가에 서서 산젠인을 먼저 갈까 호센인을 먼저 갈까 망설이다 호센인을 들렀다 산젠인을 가는 편이 좀 더 한적함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호센인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산젠인과 호센인을 왔던 게 수국이 한창 예쁠 때였는데 가을은 봄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사람들을 반겼다.
별을 뿌려 놓은 것 같은 정원에 흩어진 단풍잎들
그 사이사이를 잔잔히 흘러내리는 물소리
호센인 입장료에는 맛차가 포함되어 있어 안으로 들어가 티켓을 주고 자리를 잡고 앉으면 맛차와 오카시를 내어다 준다. 그렇게 정원을 바라보며 맛차를 즐기는 차분한 시간이 호센인 본연의 맛이지만, 가을의 한가운데서 800년 깊이의 절을 음미하기엔 사람들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밀려들었다. 아마도 그 시간대가 단체 관광객이 몰리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는 맛차를 보리차 마시듯 들이키고는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왔다.
가장 아름다운 정원 풍경에서는 밀려났지만 그곳을 빠져나온 덕분에 생각지 못했던 이로리가 있는 소담스러운 정원이 보이는 방을 만날 수 있었다.
옅은 핑크빛 방석에 앉아 소란함이 없는 작은 정원을 바라보며 즐긴 평온한 시간, 감사한 시간이었다.
호센인을 나와 산센인에 들리려다 입구 쪽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걸 보고 그냥 내려오기로 했다. 산젠인을 포기하고 내려오는 게 내심 아쉽긴 했지만 의외로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처럼 한적해 느린 걸음으로 단풍을 즐기기엔 좋았다. 산젠인으로 향하는 좁다란 계곡길이 오래 남는 가을의 오하라. 겨울 풍경은 어떨지 살짝 기대를 걸어본다.
그날의 덤 하나,
오하라 산책길에 만난 거대해서 귀여웠던 순무.
덤 둘,
그날 카모가와의 도로의 한중간에서 만난 토끼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