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처럼
난젠지 [南禅寺]역시 아침 시간이 좋지만 아라시야마에서 아침을 서둘러 난젠지의 고요한 아침까지 달려오기란 그리 쉽지 않다. 오후를 조금 넘긴 시간, 난젠지까지 가는 길은 버스를 택했다. 새로운 길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고 아라시야마에서 이쪽을 오는 가장 가성비 좋은 방법이기도 하니까. 지금은 아직은 걷기 좋은 교토,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이 시간을 만끽해두고 싶은 마음 역시 컸다.
단풍의 피크를 살짝 넘기긴 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많다. 산몽[三門]에 올라 내려다보는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은 되지만 인파를 피하고픈 마음이 더 커 가볍게 수로각만 한 바퀴 돌고 내려가리고 했다.
세월을 머금은 수로각이 가을 옷을 입자 그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강렬하지 않은 단풍의 색감이 낡은 수로각을 조심스레 감싸안으며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신비한 빛을 내뿜었다. 교토는 도대체 얼마만큼 다채로운 가을 풍경을 가지고 있는 걸까. 아름다운 가을을 만끽할 만큼 했으니 이 정도면 되었다 하고도 어디론가 발길을 돌리면 그곳엔 또 다른 가을이 있다. 어느 곳이 가장이라고 감히 정할 수 없을 만큼.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풍경부터 사람의 손과 자연이 적당히 조화를 이룬 풍경 그리고 사람의 손을 제대로 탄 단정한 풍경까지 어느 무엇 하나 감동스럽지 않은 풍경이 없다.
교토의 가을에 오래 머물다 보니 무엇보다 가을이 지나가는 모습, 가을 위로 겨울이 겹쳐진 풍경, 계절의 흐름을 느낄 수 있어 좋다. 화려한 가을 사이사이를 서서히 파고드는 겨울 또한 사랑하지 않다.
이 가을, 나는 많이 걷는다. 헤이안진구 쪽에서 난젠지로 와 한적한 골목길을 타고 다음은 니넨자카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새롭게 알게 되는 길과 간간이 마주치는 한적한 골목, 느린 발걸음으로 걷고 또 걷는다. 걷다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면 또 다른 풍경이 보이고, 그 풍경이 좋아 요즘은 걷다 뒤돌아보는 일이 많아졌다. 교토에 와서 새롭게 생긴 습관 하나.
오래된 마치야[町屋]를 보며 이곳에서 사는 삶은 어떨까 상상해 본다.
히가시야마 역에서 시라가와를 따라 타박타박. 구름 사이로 떠오른 하얀 달을 쫓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치온인[知恩院]에 도착했다. 지난 봄비 내리는 날 사쿠라를 쫓다 치온인에서 보낸 시간을 잠시 떠올리며 다시 타박타박.
우연히 만난 인력거가 있는 풍경.
니넨자카에 도착하자 어느새 조금씩 해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저녁노을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고다이지[高台寺] 주차장 계단도 어느새 사람들로 꽉 차고. 야사카 탑 너머로 교토 타워를 함께 담으려 애쓰며 그렇게 해가 떨어지는 교토를 만끽했다.
달빛이 유난히 아름다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