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에 가고 싶다

by 동천 김병철

신병훈련소에서 허기진 배를 충분히 채울 수 있는 식사 시간은 거의 없었다. 숟가락을 드는 순간 조교는 ‘식사 끝 5분 전’이라고 외친다. 허겁지겁 먹어보지만 5분이라는 시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간다. 식판을 절반 이상 비운 사람은 그나마 다행이다. 다른 사람에 비해 동작이 느린 나는 언제나 배가 고팠던 기억이 새롭다. 베이비붐 세대인 내 또래 친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른바 ‘빨리빨리 문화’에 잘 적응하는 편이다. 그런 나는 은퇴 이후에도 이런 삶의 패턴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늘 규칙적이고 패스트푸드 같은 삶을 살아온 나에게 생활 패턴을 완전히 바꿔놓은 전대미문의 사건이 최근 일어났다.

2020년 초부터 지금까지 듣지도 겪어보지도 못한 ‘COVID-19’ 팬데믹 뉴스가 온종일 TV 화면을 도배질한 것이다. 일상은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언택트(untact, 비대면이라는 신조어), 온 택트(ontact, 비대면+온라인을 통한 외부와의 연결)이라는 생소한 용어에 익숙해져야만 했고, 삶의 패턴·업무 방식·생활 방식 등에 큰 변화를 초래했다. 이에 따라 재택근무·온라인 수업·화상회의가 일상화되고, 사적 모임의 인원수 제한이라는 통제된 사회로 되돌아간 현실이 모든 사람을 힘들게 만들었다. 지인들의 결혼식이나 장례식 불참은 감염병 예방법에 의해 혼주나 상주가 이해할 수 있어 다행이지만, 사생활 제한으로 바깥나들이를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런 가운데 내게 가장 힘든 건 무더운 여름철에도 마스크를 착용해야만 했고, 친구들과 어울려 막걸리 한 잔 마음 놓고 나눌 수 없는 무료한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사생활 침해는 공공복리를 위해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다지만, 갑작스러운 생활 패턴 변화는 60대에 들어선 우리 부부를 더욱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몸이 아파도 마음대로 병원에 갈 수 없고, 디지털 문화에 서툰 아날로그 세대인 우리 부부가 커피숍이나 프랜차이즈 업장 등에서 주문이나 결제를 생소한 ‘키오스크’(KIOSK)라는 무인 정보 단말기에서 해야만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사회적 변화가 우리 부부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COVID-19’의 직격탄을 맞을 줄이야?

평소 척추관 협착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던 아내가 2020년 12월 갑자기 참을 수 없는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각급 병·의원은 ‘COVID-19’로 인해 정상적인 진료가 불가했고, 진료 예약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더구나 정기적으로 다니는 병원의 정형외과는 4개월 이후로 예약이 잡혀있어 예약 가능한 아무 병원에서나 우선 진료를 받아보겠다는 게 아내의 생각이었지만,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다니던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신경외과 담당 주치의에게 연락하여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2020년 12월 31일 오후 어렵게 진료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약속된 날 진료를 마친 주치의는 척추관 협착증이 심각해 빠른 치료가 필요하다면서 진료소견서를 써주고 응급센터 접수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우리는 주치의의 안내로 응급센터 접수를 했기 때문에 나름 빠른 진료를 기대했지만, 여간해서 아내 차례는 돌아오지 않았다. 응급센터는 말 그대로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들을 치료하는 곳이기 때문에 생명에 큰 지장이 없는 아내는 매번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마스크를 착용한 채 하룻밤을 꼬박 지새우는 동안 CT와 X-Ray 촬영, 혈압측정과 피검사 등이 전부였다. 해가 바뀐 2021년 1월 1일 오전이 돼서야 담당 의사의 진료를 받고 필요한 처치를 받았다. 진료 결과, 아내는 허리와 관계있는 3개의 최악 병명인 척추관 협착증·척추측만증·척추 디스크 등을 모두 갖고 있었다. 꾸준히 치료를 받아온 아내가 갑자기 응급센터를 찾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의사는 아주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척추를 감싸고 있는 근육이 많이 약해졌기 때문이란다. 그동안 척추관 협착증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운동하여 근력을 키워온 덕분에 큰 탈 없이 지내왔는데, ‘COVID-19’로 인해 거의 1년간 체육시설을 이용치 못하는 등 근력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근육 소실이 컸던 게 치명타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초등학생 손주들이 온라인 수업을 받거나, 아들딸이 늦게 퇴근할 때면 아내는 밤늦게까지 손주들 뒤치다꺼리를 해야만 했기에 아픈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었고, 새로운 생활 패턴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아내를 힘들게 한 ‘COVID-19’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고 변이를 계속하고 있는데, 언제쯤 ‘COVID-19’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요즈음엔 정부의 방역지침이 다소 나아졌지만, 또 다른 바이러스는 계속 나올 거라니 걱정이다. 최근 ‘원숭이 두창’이라는 바이러스까지 출현하여 사람들을 바이러스 공포로 몰아붙인 느낌이 든다. 지구 온난화 등 세계적인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차원은 차치하고라도, 내 개인적 삶을 되돌아보면 지금껏 오직 앞만 보고 ‘빨리빨리’ 열심히 살아온 우리의 현주소를 돌아볼 때라는 생각이 든다. ‘COVID-19’ 발생에 대해 아직 명확한 원인은 규명되고 있지 않지만, 인간이 ‘문명화‘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채 자연을 파괴하고 자연의 섭리를 도외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건 아닌지, 감히 생각해본다. 이제부터라도 만물의 영장으로서 자연 질서를 파괴하는 우리가 아니라, 좀 불편하더라도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간이 되어야겠다. 앞으로는 1999.10. 이탈리아의 ’ 그레베 인 키 안타‘에서 출발한 ’ 슬로푸드 먹기와 느리게 살기‘운동인 ’ 슬로시티‘(slow city)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언젠가 예전처럼 안전하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아내랑 손잡고 청산도에 가서 ’ 느림의 철학‘을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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