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 인간만이 직립 보행하고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만물의 영장이다 ‘라고 배웠다. 그러나 최근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인간뿐만 아니라 침팬지나 남미의 독수리 콘도르 등도 도구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또한, 동물만이 감정표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은 동물보다도 더 예민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나 말, 그리고 역사적 기록을 저장할 수 있는 문자나 숫자를 가지고 있는 동물은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인간이 유일한 것 같다.
나는 가끔, ’왜 인간은 다른 동식물들은 사용하지 않고 있는 문자나 숫자를 발명하여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먼 훗날 후세들에게 지금의 역사를 알려주고 시대를 가늠하게 하는지 알 수 없다 ‘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곤 한다. 아침에 해가 떠서 저녁에 해가 지고, 또 달이 떠서 지는 다음 날 아침까지를 ’ 하루‘라고 문자로 표기하고, 숫자로는 ’ 24시간‘으로 표시한다. 천문학을 연구한 학자들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 주기로 1일 24시간과 한 달 30일, 그리고 1년 365일을 계산하고 있다. 물론 조금씩 오차는 있기에 윤년이나 윤달 등이 있지만 대체로 맞아떨어진다. 요즈음은 달력 표기가 대부분 양력이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양력 날짜 밑에 반드시 음력을 표시했다. 음력은 농어업에 있어서 매우 정확한 시기를 알려주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지침서였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때 주변으로부터 ’ 음력은 농사를 짓거나 어업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또한 선진국은 양력을, 후진국은 음력을 주로 사용한다는 말도 널리 퍼져있었다. 아마 근대화가 일찍 시작된 소위 선진국에서 양력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구한말 이전만 해도 음력을 사용하였는데 1895년 을미개혁 이후 우리 고유의 ’ 설날‘이 사라지게 된다. 그 후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강요에 의해 양력 중심으로 바뀌게 된다.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양력을 강요하면서 우리 민족을 가장 크게 압박했던 것이 고유의 ’ 설날‘을 바꿔 민족정기를 빼앗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제가 총칼로 강요한다고 해서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 설날‘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겉으론 양력 1월 1일 차례를 지냈지만, 또다시 음력 1월 1일이 되면 제대로 된 ’ 설날‘ 차례를 지내곤 했다. 이른바 이중과세를 한 셈이다. 이런 이중과세 풍속은 낭비와 국제화 역행이라는 이유에도 불구하고 해방 후에도, 5.16 쿠데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 설날’을 두 번 쇴던 기억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그러다가 유림과 대다수 국민 여론을 참작한 전두환 정부는 정통성을 얻기 위한 일환으로, 1985년 음력설을 ’ 민속의 날‘로 지정하고 딱 하루 공휴일로 인정했다. 물론 정식적인 설날은 양력 1월 1일이다. 그 후 민주화 운동이 본격화되자 1989년 2월 노태우 정부는 ’ 민속의 날‘을 ’ 설날‘이라는 명칭으로 명문화하고, 휴일도 ’ 설날‘ 전후를 포함한 3일로 개정했다. 잃어버린 우리 고유의 명절 ’ 설날‘을 제대로 되찾은 것이다. 이후 1991년부터는 신정 휴일이 3일에서 2일로 줄었고,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양력설을 설이 아닌 1월 1일로 규정하고, 공휴일도 하루 축소했다. 다행스럽게도 ’ 설날‘이 폐지된 후 100여 년 만에 우리 고유의 ’ 설날‘이 제 자리를 찾은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연말연시가 되면 제법 식자층에 속한 사람이나 방송, 신문 등 주요 매스컴에서는 ’ 신정’(新正)이니 ‘구정’(舊正)이니 하는 말이 자주 오르내린다. 나는 그게 평소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되었다. 여론을 주도하는 방송사나 언론사, 그리고 지도층 인사들 입에서 ‘구정’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니 말이다. 나는 평소 친구들과 대화 중에 ‘설날‘을 ‘구정’이라고 하면 일부러 못 들은 척한다. 그러면 친구들은 내 의중을 금방 알아차리고 ‘설날’이라고 말을 바꿔 알랑방귀를 뀐다. ‘신정‘이나 ’ 구정‘이란 말은 분명 일제의 잔재일 것이다. 우리는 반만년을 이어오면서 오로지 ’ 설날‘이었지, ’ 신정‘이나 ’ 구정‘이란 말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한자 뜻풀이에서 ’ 신정‘(新正)은 새로운 정월(正月)이고, ’ 구정‘(舊正)은 ’ 신정‘에 상대하여 새롭게 생긴 말로 양자 모두 신조어라고 보면 된다. 우리 고유의 명칭은 오로지 ’ 설날‘이다. ’ 설날‘에 대비된 말로 양력 1월 1일을 ’ 신정‘이라고 불러도 별문제는 없겠지만, ’ 설날‘을 ’ 구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 다소 언짢은 생각이 든다.
요즈음 아이들은 우습게 들릴지 모른다. 내가 어릴 때 ’ 설날’이 되면 설빔이라고 해서 부모로부터 옷이나 신발 등을 선물 받고 좋아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는 모두가 힘들게 살았기 때문에 평소 옷가지나 신발 선물을 받는다는 것이 그다지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설날‘이나 ’ 추석‘ 등 명절이 되어야 소위 때때옷을 입고 새 신발을 얻어 신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런 명절 문화는 일본이나 중국 등 소위 동북아 3국은 비슷할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 후에 안 사실이지만, 중국은 우리의 풍습(음력에 맞춰 설날이나 추석 등이 있는 것)과 거의 일치하지만 일본은 달랐다. 우리와 중국은 아직도 양력과 음력을 병행하지만, 일본 사회에서 음력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30여 년 전 내가 일본에 처음 갔을 때는 한창 무더운 7월 중순 여름이었다. 일본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해양성 기후이기 때문에 여름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대단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그런데 그렇게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열도 곳곳에는 각 지역에 맞는 많은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특히, 교토에서는 일본 최대 축제인 ’ 기온 마쓰리‘(祇園祭)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 뒤 알게 된 사실이지만, 8월 15일 전후한 여름을 ’ 오봉 야스미’(お盆休み)라 하여 일본 최대의 명절로 즐기고 있었다. 이때는 보통 일주일에서 2주일 정도 공식적인 휴일을 갖게 되고, 우리나라 명절 때처럼 전국의 고속도로는 귀성객으로 몸살을 앓는다. 공무원 등 관공서는 공식적인 휴일이 없지만 8월 15일 전후로 보통 일주일 정도 3교대나 4 교대 등으로 조 편성을 하여 ‘오봉 야스미’를 즐긴다. 아마 우리나라 관공서가 정식 휴일이 아닌 데도 공무원들이 조를 편성하여 휴일을 갖는다면 우리나라 사람, 특히 언론에서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사회는 달랐다. 정부도 국민도 모두 묵시적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왜 그것이 가능하고, 일본인들은 무더운 한여름에 축제를 즐기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알고 봤더니, 8월의 일본 ‘오봉 야스미’는 서양의 ‘추수감사절‘이고,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 추석’과 같은 대명절이었다. 한중일 동북아 3국은 가을걷이가 끝난 음력 8월 보름 자연과 조상에게 감사하는 제사를 지내고 마을 축제를 즐겼는데, 그것이 추석(秋夕)이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양력과 음력을 병행하기 때문에 지금도 음력 8월 15일 추석을 쇠고 있지만, 일본은 모든 행사가 양력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런 음력 8월 15일을, 그냥 양력 8월 15일 그대로 지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의 ‘오봉 야스미’는 양력 추석인 셈이다. 음력을 양력으로 쇠고 있을 뿐이지 우리의 ‘추석’과 같은 큰 명절이다. 오곡백과가 무르익은 음력 8월이 아니라 양력 8월 추수감사절, 추석을 지내기 때문에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중국과 우리는 음력 8월 보름 ‘추석’을 쇠지만, 일본은 양력 8월 ‘오봉 야스미’라 하여 추석을 쇠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앞으로는 음력설을 ‘구정’, 양력설을 ‘신정’이라고 하는 뿌리도 근거도 없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겠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는 오로지 ‘설날’이 있을 뿐이지 ‘구정’(舊正)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