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국 이상을 거론할 때 자기 나라 국명을 먼저 내세우고, 그 다음에 친밀도나 큰 나라 순으로 나열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한일관계’가 아닌, ‘일한관계’로 표기했다. 일본을 먼저 앞세웠다. 왜 그랬을까? 일한관계가 발전적으로 나아가려면 양국 간「배려」가 선행되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먼저 결론을 도출해 본 것이다.
사실 난 운 좋게도 젊은 시절 일본 교토에서 일본의 사회·문화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일본은 얼핏 보면 우리나라와 너무나 닮은 점이 많다. 우랄알타이어에 속하는 말의 어순과 한자문화권, 외모나 효를 중요시하는 사회 등등.
하지만 일본사회 내면 깊숙이 들어 가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일본인들은 친척이나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자기 마음 100%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온 말이 ‘혼네’(本音)와 ‘타테마에’(建前)이다. 즉, 본마음과 가식이다. 또한, 사무라이정권 하에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절대 기분 나쁘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미마셍’(미안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아니오’라는 부정적인 말은 잘 사용하지 않고 애매모호하다. 이와 달리 우리는 어떤가? 생면부지의 사람일지라도 조금만 친해지면 간도 쓸개도 없이 다 내어준다는 말이 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서툴고 잘 사용하지도 않는다. 자기변명이 강하다. ‘예‘ 아니면 ’아니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이란 있을 수 없다.
또한, 일본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자신들이 열도에 살고 있는 동양인임에도 불구하고, 동양에 살고 있는 서양인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면에서 자기들이 동양의 최고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런 우월감 내면에는 한국이나 중국, 동남아 등지 아시아계 사람들을 무시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건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통해 이미 식민지가 된 한국이나 대만을 비롯하여 중국대륙, 동남아 각국, 태평양제도 등등 지역을 지배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도 그런 일본을 일방적으로 무시한다. 세계에서 감히 일본을 무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 한국인에게 ‘왜 일본을 무시하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궁색하다. 과거 우리가 일본에 한자와 불교, 유교 등 선진문물을 전해줬다는 것이다. 그럼 중국은 과거 우리에게 많은 선진문물을 전해주고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당시는 중국에서 한한반도로, 다시 일본으로 문화가 전해지는 일종의 흐름이 그랬다. 그런데, 현재가 아닌 과거의 어떤 행위로 우월감을 갖는다는 것은 어쩐지 꺼림칙하다. 우리나라에서 일본이나 일본인에 대해 좋게 말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만에 하나 좋게 말하거나 일본을 두둔하는 발언을 한다면 그 자리에서 매장되고 만다. 당장 친일파라고 손가락질을 당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일본과 하는 스포츠경기는 무조건 이겨야한다. 실력이 부족해도 깡다구로 이겨왔다. 축구만 봐도 알 수 있다. FIFA 순위에서 일본이 우리보다 앞서지만 역대 전적은 우리가 월등히 앞선다. 이는 우리를 식민지배한 일본에게 절대 질 수 없다는 강한 정신력이기도 하겠지만, 과거에 대한 일종의 복수심의 발로일 것이다. 그래서 ‘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이 생겼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일한관계는 어느 날 갑자기 대두된 것이 아니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계속 반복되어 온 역사적 사실이다. 이런 역사적 일한관계를 살펴보고 길을 모색한다면 ‘발전적 일한관계’가 가능하지도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그 역사적 사실의 하나로 백제멸망에서 첫 번째 원인을 찾고 싶다.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자 많은 유민들이 일본열도로 유입된다. 고향에 살지 못하고 섬나라 일본으로 간 유민들은 일본사회에 정착하고 동화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냈고, 또 그런 과정에서 그들의 후손들에게 어떤 말을 남겼을까? 나는 감히 상상해 본다.「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에 반드시 복수하고, 백제 고토를 다시 찾아야한다.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혹자는 말한다, ‘정치적·사상적 원한이 사라지는 데는 대략 1세기가 걸린다’고. 그랬을 것이다, 백제 유민들이 일본열도에 정착하여 그들과 동화되면서 자자손손 백제의 원수인 신라에 복수하자고. 통일신라 이후 얼마나 많은 왜구들이 우리의 남동해안을 노략질했는지는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수중릉을 만든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를 두고 학교에서, 문무왕이 국가를 사랑하는 애국충정의 극치라고 배웠다. 정말 그럴까? 역사는 항상 승자의 편이다. 당시 일본열도 사람들과 융화한 백제유민들의 한에 대해선 일체 언급이 없다. 일본인들은 우리의 고대 삼국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를 한자로 그대로 사용하면서, 고구려는 ‘코꾸리’, 백제는 ‘쿠다라’라고 하지만 신라는 ‘시라기’라고 한다. 고유명사 뒤에 ‘∼기’를 붙인 것이다. 일본어에서 ‘∼기’의 경우는 ‘아주 더러운 놈‘,’나쁜 놈‘,’죽일 놈‘등 저주할 때 붙여 사용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일본인들이 신라에 대해 얼마나 악감정을 갖고 있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왜구들이 이렇게 하니 신라인 또한 일본에 대해 강한 적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300 여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인에게 그런 피가 흐른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반도와 열도 사람들은 서로 반목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지금의 영호남 지역감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둘째는, 양국 간 이해부족이 가장 큰 문제다. 일본은 고대국가 땐 한반도 등 북방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였지만, 적어도 고려시대 이후엔 북방문화와 남방문화를 아우른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해양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당시 오로지 중국만 바라보고 살았던 한반도의 집권자들은 그런 일본의 사회·문화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 중국처럼 갓 쓰고 도포 입은 양반문화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오랑캐나 야만인 취급을 했다. 일본인들의 기모노나 게다, 훈도시 등을 아예 무시한 게 사실이다. 모든 게 중국 것만 참이고 선이며, 그 이외는 모두 야만이었다.
그 결과, ‘7년 전쟁‘이라는 임진왜란과 청나라에 의한 정묘·병자호란, 그리고 근대에 들어 35년간의 일제강점기 등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들이 한반도에서 일어난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한반도가 황폐화되고 초토화되었으면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당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집권자들이 외교적 노력이나 민생안전을 위한 여러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못하고 1910년 끝내 국권상실이라는 최악의 사태까지 맞이하게 된 것이다. 난 여기서 일본이 저지른 여러 만행에 대해 왈가불가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왜냐하면 일본을 탓하기 전에 먼저 우리 스스로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반성한 후 또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설령 일본이 잘못한 게 많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연약하고 어리석음을 한탄해야 할 것이다.
일한관계는 과거의 일이 아니다. 지금도 애증으로 얽힌 현재진행형이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에도 양국 간 얼마나 많은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있는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위안부나 강제징용자 배상문제, 독도영유권 등으로 양국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역사철학자 토인비는 역사의 현재성을 강조했었다. 역사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데 대다수 사람들은 그걸 인식하지 못한다. 이제 일한 양국은 동북아시아 평화와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양국이 발전적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먼저 양국은 과거사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향후 상호협력방안 등에 대해 과감히 소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일본은 과거 제국주의국가로서 저지른 여러 만행에 대해 용감하게 용서를 구하고 사과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일본이 독일에게 배워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 등이다. 일본어에 ‘자꾸바란’이라는 말이 있다. 일본인들은 평소 본심을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배를 갈라놓고 숨김없이 털어 놓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솔직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하면서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는 용기는 참으로 아름다울 것이다. 그래야만 쌍방이 서로를 믿고 무엇이든지 소통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일본만 탓하지 말고 100%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합의선상에 들어오면 과감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시쳇말로 ‘과거는 흘러갔다’는 유행가 가사가 있다. 과거는 과거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일찍이 ‘사랑은 대화’라고 했다. 일한 간의 허심탄회한 대화, 즉 소통만이 발전적인 일한관계로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킬 것이다. 자꾸 소통하다보면 상대방을 이해하는 배려심이 생기고 믿을 수 있는 신뢰가 구축될 것이다. 난 지금껏「배려」라는 말보다 더 아름다운 말을 발견하지 못했다.「배려」를 통한 일한관계가 더욱 발전적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지금은 일한정부 지도자들의「배려」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