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사랑

by 동천 김병철

새터민들 얘기를 들어보면, 처음 한국에 정착할 당시 한국 사람들의 대화 내용이나 TV 연속극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우리말 속에 영어 등 외래어가 너무 많이 섞여 있어서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일상대화 가운데 느끼는 공통점은 외래어의 범람으로 순수한 우리말을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힘들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어를 얼마나 잘하기에 새터민들이 잘 알아들을 수 없을까?

한편, 어떤 사람은 일본인들의 영어 표기나 발음을 듣고서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영어를 잘못한다고 곧잘 빈정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가령 ‘맥도널드’를 일본인들은 ‘마끄도나르도’라고 발음한다. 사실 일본어는 모음이 ‘아이우에오’등 5개 밖에 없기 때문에 받침이 있는 말을 발음하는 데 있어서 한계가 있고 몹시 애를 먹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만난 일본인들과 영어로 대화할 때 나보다 잘했으면 잘했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왜 맥도널드’를 ‘마끄도나르도’라고 발음하는 걸까? 정말 일본인들은 영어 발음을 제대로 못 하는 걸까?

이에 반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사람들보다 영어 발음을 잘한다고 자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맥도널드’라고 발음하는 우리말을 듣고 미국인들은 과연 알아들을 수 있을까? 내가 만난 미국인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얘기하면서 ‘맥도널드에 가자’고 얘기했더니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질 못했다. 혀가 완전히 입천장 안으로 꼬부라져 들어가 ‘먁∼그드날드’라고 하자 겨우 알아듣는 것이다. ‘마끄도나르도’나 ‘맥도널드’ 모두 미국인의 귀에는 매한가지로 들린 것 같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본인보다 영어를 더 잘한다고 으스대는 폼이 좀 어딘지 모르게 겸연쩍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일본은 우리 한글과 같은 독창적인 자신들의 글자가 없기 때문에 한자의 변을 따서 8세기경 ‘가나’(仮名)를 만들어 사용해 왔다. ‘가나’(仮名)는 ‘진짜 글자’라는 ‘마나’(眞名)에 대비해 ‘가짜 글자’ 또는 ‘임시 글자’라는 뜻이다. ‘가나’는 우리의 통일신라 시대 향가집에 남아있는 ‘이두’(吏讀) 형태와 유사한 음절문자다. 처음엔 ‘히라가나’(平仮名)와 ‘상용한자’만으로도 충분했지만, 개항 이후 외래문물이 급속히 유입되면서 ‘히라가나‘만으로 모든 것을 표기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다시 만들어진 것이 ’가타가나‘(片仮名)다. ’가타가나‘는 외래어나 지명, 고유명사 등을 표기하는데 주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일본어는 ’히라가나‘, ’가타가나‘ 그리고 ’한자‘의 3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이와는 달리 우리 한글은 자음 14개와 모음 10개 등 기본 24자이고, 그 과학성을 인정받아 1997년 10월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우수한 문자이며, 소리글자이기 때문에 웬만한 소리는 모두 표기가 가능하다.

그러나 요즈음 영어나 한자 등 외래어의 지나친 남용으로 순수 우리말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100여 년 전 구한말 사람들이 요즈음 우리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눈다면 우리말을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을까? 아마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35년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은 일본어가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자리 잡았고, 해방 후엔 미군정 하에 식자층을 중심으로 무분별한 영어 사용이 지나쳤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만 해도 한문 사용을 우월 시 했고, 한글을 언문이라 하여 무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쉬운 한글사용보다는 어려운 한문을 사용함으로써 식견이 높음을 과시했고, 해방 후엔 한자 대신 영어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순수 우리말 속에 일본어나 영어가 알게 모르게 너무도 많이 침투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한자는 중국어 한자가 아니고 일본에서 통용되고 있는 한자, 즉 일본 고유어를 한자로 표시한 일본어 한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다. 형태만 한자일 뿐이지 사실은 일본어인 셈이다. 또한, 요즈음 거리의 간판이나 젊은이들의 대화 내용 속에 외국어, 특히 영어 남용이 얼마나 많은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북아 3국 중 우리의 경우만 그렇지 중국이나 일본은 전혀 다르다고 한다. 일본이나 중국은 개항과 더불어 서양 문물 유입으로 민족의 자존이 무너지거나, 정신적 혼란으로 인한 사회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소위 ‘국학’(國學) 융성에 온 힘을 기울여 외국어를 자신들의 언어로 소화하여 표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 100% 그렇게 했다면, 중국의 경우는 약 60% 가량 그렇단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경우는 거의 제로에 가깝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고, 일본이나 중국에서 만든 신조어를 그대로 가져와 도용(?)해 사용하고 있다 하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본다. 밉든 곱든 벤치마킹을 해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일본이 어떻게 국학(國學)발전에 노력했는지 살펴본다면, 앞으로 우리말을 어떻게 보존 발전시켜야 할지 그 해답이 나올 것이다.

일본은 소위 사무라이, 무신이 지배하는 나라였다. 비록 사무라이 정권일지라도 국학발전을 위해 문신을 무척 우대하는 정책을 펴왔고, 특히 국어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해 왔다는 것이 우리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런 일본의 국학자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언어를 보존 발전시켜 왔을까?

첫째, 서양문물 유입에 따른 외국어 표기는 국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가능한 한 새로운 일본어, 즉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했다. 가령 ‘science’는 ‘科學’(카가꾸)로, 'nature'는 ‘自然’(시젠)으로, 'school'은 ‘學校’(캇꼬)로, ‘teacher’는 ‘先生’(센세이) 등 한자를 빌어 중국 한자와는 전혀 다르게 자기들 언어로 과감히 바꾸어 사용한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일본어를 중국 한자의 우리식 발음 그대로 ‘과학’·‘자연’·‘학교’·‘선생’으로 발음하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그것이 일본어인 줄 알지 못하고 중국 한자라고 잘못 알고 있다.

둘째, 신조어로 표기하기 힘든 외국어는 그 원어 발음을 살려 일본식으로 발음하고 ‘가타가나’로 표기했다. 소위 ‘일본식 영어’(和製英語)다. ‘사무실 여직원’을 ‘오피스 레이디’(office lady)라고 하는 것이 그 일례이다. 위에서 ‘마끄도나르도’의 경우도 이에 해당할 것이다. 즉, 자존을 지키기 위해 ‘일본식 영어’ 발음을 하는 걸 보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인이 영어를 못한다고 단정해버린 것이다.

일본은 위와 같은 2가지 방법으로 외래어를 완전히 자기네 식으로 바꿔 사용해 왔다고 한다. 일본사람들의 ‘자기 말 사랑’은 가히 짐작할 만하다.

여기서 중·일간 자존심이 걸린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중국인 친구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19세기 말 서양의 기차(train)가 들어오자 일본 국학자들은 ‘증기의 힘(汽)으로 가는 수레(車)’라고 하여 ‘汽車’(일본어로 ‘키샤’)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이걸 본 중국 국학자들은 중국에는 아직 적당한 말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의 ‘汽車’를 그대로 사용하느냐 마느냐로 옥신각신하다가 고심 끝에 자존심을 버리고 ‘汽車’를 자기네 국어사전에 올리고 사용하다가 얼마 후 ‘불의 힘으로 가는 수레’라고 하여 ‘火車’(중국어로 ‘흐허쯔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汽車’, 중국의 ‘火車’를 그대로 가져와 우리 식 한자 발음으로 ‘기차’, ‘화차’라고 발음하며 사용하고 있다.

이런 신조어의 예는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용어의 상당수, 아니 어쩌면 대부분이 일본이나 중국의 국학자들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일본이나 중국의 국학자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국학(국어) 발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음에 비해 우수한 한글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학자들은 전혀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고, 지금도 이렇다 할 노력의 흔적이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7,80년대 대학가에서 소위 주사파가 활개를 쳤던 것도 정치적 색채는 그만두고라도 일종의 우리 것을 찾고 지키고자 하는 학생들의 노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글의 정체성을 잃고 영어 등 외래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던 그 당시 우리나라와 달리 북한에서는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순수한 우리말을 지키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일례를 본다면, 축구에서 ‘코너킥’(corner kick)을 북한에서는 ‘모서리 차기’라고 한다. 여기서 ‘코너킥’은 틀리고 ‘모서리 차기’가 옳다고 얘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여기서 과거 주사파의 행동이 옳고 그름을 논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북한이란 폐쇄사회에서도 우리말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흔적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을 지킨다는 건 곧 순수한 우리말을 보존 발전시키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 사람 상당수가 대통령·총리·장관·공무원·국가·학교·교장·교사·선생·국어·수학·자연·음악·미술 등 일상용어가 한자로 표기되어 있을 뿐이지 결코 한자가 아니라 일본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일본어를 도용해 사용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울화통이 치밀 정도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무작정 반일이니 극일이니 하는 것보다 먼저 우리말 속 일본어 잔재를 뿌리 뽑고, 우리말 보존 발전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할 것이다. 일전에 법조계에서 일본식 법률용어를 바로 잡는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 진척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나마 모 방송국 ’우리말 겨루기‘ 프로그램이나, 모 신문사 ’우리말 톺아보기‘ 등에서 우리말 보존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발전 지향적 측면은 많이 부족한 것 같다. 발전 지향적이라함은 영어 등 외래어 홍수 속에서 순수 우리말 신조어 발굴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말의 우수성을 알고 지키려고 하는 노력과 국학자(국어학자) 등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아름답고 순수한 그리고 토속적인 우리말 발굴과 보존 발전에 노력할 때 우리 국민의 정체성은 배양되지 않을까?

더 나아가 나이 든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전에 지방의 방언(사투리)을 보존 발전시키는 방안도 연구해야 할 숙제일 것이다. 크게 나누어 전라도와 경상도 방언사전, 작게는 각 시·도·군의 방언사전을 지자체별로 만들어 보존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가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우리말 사랑이 곧 나라 사랑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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