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우리네 생활은 예전에 비해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음을 아마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요즈음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유행가, ‘보릿고개’를 아는 사람이라면 더더구나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 않을까? 예전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왜 그렇게도 못 먹고 못살았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기까지 하다.
못살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여러 사회현상 중 하나, 친가와 외가의 차별을 나는 몸소 겪었다.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보다 다섯 살 아래의 외사촌 동생은 집안의 장손이고 독자이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 그 동생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설날 세배하면 외할아버지께서 나에게는 50원, 나이 어린 외사촌 동생에겐 100원을 줬던 기억이 난다. 요즈음 같으면 어느 집이든지 초등학생보다 중학생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용돈을 주는 것이 뻔하다. 아니면 적어도 같은 금액의 세뱃돈을 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외할아버지가 살아 계신 동안 내내 그런 차별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외할아버지는 친할아버지와는 다른 존재로 알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애들과 대화를 해보면 그런 편협된 생각을 하지 않고 있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마디로 친가·외가를 구별하지 않고 똑같이 취급한다. 내 아들도 우리 부부에게 손자를 선물해 주었지만 딸 손주들과 달리 아들 손자라고 해서 특별히 애착이 가는 것은 사실 못 느끼고 살고 있다. 물론 그렇지 않고 고리탑탑한 옛날 사고를 갖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 애들은 양가에 대한 차별의식이 전혀 없다. 그래서 나도 그냥 ‘손자’, ‘손녀’라고 하지 일부러 ‘외손자’, ‘외손녀’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우리 손주들은 나를 부를 땐 ‘목동 할아버지’, 사돈에겐 ‘창원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초등학교 5학년인 큰 손자로부터 ‘외할아버지’란 말을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냥 ‘할아버지’라고 한다. 나는 요즈음 이런 손자와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가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한 달에 한 번 이발소 가는 날이 무척이나 재밌고, 그날이 기다려진다. 정확히 말해 10년 전부터 그랬다. 그전까지만 해도 이발소 가는 것이 싫었다. 싫다기보다 이발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두상이 M자로 벗겨진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은 나는 친구들과 비교할 때 머리카락 숱이 너무 적어 어려서부터 이마가 넓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지냈다. 그러다 보니 50대가 되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넓은 이마가 확실한 대머리로 변해버렸다. 처음엔 그다지 개의치 않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머리카락 숱이 많은 사람이 점점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어떤 친구는 가발을 쓰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주변에서 머리카락 이식을 했다거나, 약을 먹거나 바르고 새 머리카락이 나왔다는 말을 들을 땐 나도 한번 그렇게 해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아내나 애들로부터 ‘대머리면 어떠냐?’는 식의 두둔하는 말을 듣고 자신감을 얻었다고나 할까, 머리카락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살아온 게 사실이다. 거기다가 반곱슬 머리여서 머리를 감고 난 후엔 빗질이나 드라이할 필요가 없고 손질이 간편해서 좋다. 머리를 감고 그냥 수건으로 몇 번 탈탈 털고 나면 깨끗이 끝나기 때문이다. 남들이 들으면 이해하지 못하고 웃겠지만 내가 결혼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아들딸 결혼식조차 이발소를 들르지 않고 미장원에서 간단히 커트만 하고 참석했을 정도다. 머리카락이 많은 사람은 여러 가지 스타일로 이발을 해보고, 머릿기름도 바르고, 나름대로 멋을 부리지만 난 지금껏 단 한 번도 이발다운 이발을 해본 적이 없다. 이발하고 머리를 감으면 보통 드라이로 마무리를 하는데 나는 평생 드라이가 뭔지 모르고 살았기 때문에 드라이를 사용하는 사람을 볼 때면 부럽기도 하다. 친구들은 가끔 내가 이발하러 간다고 하면, ‘머리카락이 많지 않으니 이발료를 반값만 내라’는 우스갯소리를 던지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이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도 채 안 되는데, 다른 사람들은 20분 전후로 나보다 2배 이상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이발소 가는 날이 기다려지고, 이발소 가는 길이 즐거운 까닭은 딸 손자 손정인 때문이다. 현재 초등학교 5학년인 정인이가 10년여 전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난 깜짝 놀랐다. 핏덩이 신생아의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너무나도 예뻐 보였는데, 머리카락 숱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다. 첫돌이 돌아오기 전에 머리카락을 빡빡 밀어줘도 숱은 별로 많아지지 않았다. 평소 대머리라는 말을 듣고도 기죽지 않고 살아온 나 자신이 갑자기 손자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창원 할아버지는 머리카락 숱이 많아 보기 좋은데, 정인이가 목동 할아버지를 닮아 대머리가 되었구나!’라는 말을 들을 것이 뻔해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먼 훗날 손자로부터 조금이라도 원망을 덜 듣기 위해서, 아니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안받기 위해서는 내가 손자와 함께 이발소에 다니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정인이가 첫돌을 지내고 이발소에 갈 때쯤 나는 딸에게, ‘앞으로 정인이 이발은 내가 책임질 테니 신경 쓰지 말고 내게 맡기라’고 말했다. 딸이 내 마음을 알아주든지 몰라주든지 그런 건 상관없이 손자 손을 잡고 함께 이발소에 간다는 그 자체가 미안한 정인에게 절체절명의 사명감처럼 느껴졌다. 처음 얼마간은 가장 가까운 이발소에서 이발 후 최대한 빨리 집에 돌아온 것으로 끝났다. 그냥 손자에게 이발시켜주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러나 차츰 횟수가 늘어나고 시간이 갈수록 둘이서 이야기하는 것이 재밌고,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자 나와 정인이는 각자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한 정인이랑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기 위해 집에서 20분쯤 거리에 있는 상당히 먼 거리의 이발소를 단골로 정했다. 손자는 내가 이발소를 바꿔도 거리가 멀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나는 이발소를 오가면서 손자에게 인성교육을 시키고 싶었고, 정인이는 할아버지랑 동행하는 대가로 뭔가 물질적인 것을 바랐던 것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평소 손자를 자주 만날 수 없던 나는 이발소를 오가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발소에 함께 가면 또 다른 좋은 점은 이발사가 머리를 커트한 후 내가 직접 손자의 머리를 감겨주는 것이다. 머리를 감기면서 손자의 피부에 할아버지가 직접 접촉하는 그 느낌, 스킨십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엔도르핀이 솟는다. 정인이가 5세쯤 되었을 때 머리를 감겨주고 수건 한쪽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머리를 털어주자, 정인이는 ‘할아버지 표 수건 선풍기’라고 깔깔거리면서 웃음보를 터뜨린 채 그칠 줄 몰랐다. 수건 한쪽을 잡고 또 다른 쪽 수건을 흔들면서 머리 위로 수건이 빠르게 왔다 갔다 하면서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수건 선풍기’라고 표현한 그 발상이 놀랍다. 할아버지 손으로 머리카락을 만지며 머리를 감겨주는 것이 시원하고 좋단다.
나는 정인이랑 이발소를 오가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애쓰고 있다. 그래서 주로 근황을 묻고 정인이의 있는 그대로의 답변을 듣고 내 생각을 전달하곤 한다. 그럴 때면 정인이는 주로 친구들과 어떻게 놀았고, 집에서 동생과 뭘 하면서 지냈는지 등에 대해 소상하게 이야기해 준다. 재미있고 없고는 차치하고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정리하여 말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내게는 큰 기쁨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정인이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랑 이발소에 간다는 반대급부로 이발소 옆 가게에서 뽑기를 한다든지, 장난감이나 과자를 사달라고 한다. 그것이 할아버지랑 이발하러 가는 일종의 반대급부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정인이가 요구하는 건 부모가 잘 사주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는 딸 내외가 일부러 사주지 않은 불량 만화책이나 카드 등을 요구하여 무심코 사줬다가 딸에게 싫은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자기 욕심일지는 몰라도, 딸애로부터 싫은 소리를 들어도 정인이랑 대화하며 손자의 뜻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감을 느낀다.
그런데 요즈음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인지 몰라도 평소 책을 많이 읽는 정인이는 자신이 읽은 동화책 이야기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재미있게 들려준다. 선생이 학생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제스처를 써가면서 목소리도 그럴싸하게 흉내를 낸다. 그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았던 이야기나 반장·회장 선거에서 정견 발표 이야기 등도 서슴없이 늘어놓는다. 수학이나 영어 경시대회에 나가서 상 받은 이야기도 자랑삼아 얘기하는 손자가 한없이 기특하다. 나도 일방적으로 손자 얘기만 듣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정인이가 3학년이 되던 봄날 나도 손자에게 한 가지 제안했다. 옛날 서당 입문서인 사자소학을 공부하기로 한 것이다. 이발소 다녀오는 길에 우리 집에 들러 소학 공부를 약속하고, 약 1년여에 걸쳐 그 어려운 한문 책자인 사자소학을 다 외우고 우리의 예의범절을 익힐 수 있었다. 나로서는 이발소 가는 길에 큰 성과를 올린 셈이다. 요즈음도 이발소를 오가면서 정인이는 내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는데, 예전과는 달리 다 듣고 나면 동화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혼자 생각하여 지어낸 이야기인 것을 알고 한바탕 웃기도 한다. 어느 날 색종이로 만화책을 만들어 할아버지 선물이라면서 건네준 적도 있다. 먼 훗날 어른이 되어 책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단다. 얼마 전에는 이발소 다녀오는 길에 정인이가 인공위성 관련 문제를 내겠단다. 최초의 인공위성은 1957년 소련에서 발사한 ‘스푸트니크’(sputnik)라는 것까지는 알아맞혔는데, 러시아어인 ‘스푸트니크’가 무슨 뜻이냐는 질문에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의기양양한 손자는 ‘스푸트니크’란 ‘여행의 동반자’라고 알려준다. 이제 손자를 가르치는 것보다 내가 손자에게 배워야 할 것 같다.
그런데 한 달에 한 번 가던 이발소 가는 날이 최근 들어 줄어들었다. 40일 만에 가기도 하고, 두 달 만에 가기도 한다. 정인이가 학원에 가야 한다느니, 숙제가 밀렸다는 등등 이유로 자꾸 미루기 때문이다. 이제 할아버지랑 이발소 가는 것보다 친구들이랑 노는 것이 더 재미있는지도 모르겠다. 한 달에 한 번씩 이발소를 오가는 길에 손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정을 쌓아왔는데, 고학년에 올라갈수록 멀어질까 은근히 걱정된다. 아직까지는 할아버지랑 이발소 가는 것을 꺼리지 않아 다행이지만 정인이가 중고등학생이 되어도, 성인이 된다 해도 함께 이발소에 다니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비록 할아버지의 과욕이라 할지라도.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사랑은 대화’라는 말이 생각난다. 나에게 있어 ‘사랑은 이발소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