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교육을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말하곤 한다. 교육정책은 최소한 백년 앞을 내다보고 큰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 현실을 보면 교육정책이 조석으로 바뀌고, 시류에 야합하는 너무나 즉흥적이고 편의적인 ‘권의지계’(權宜之計)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대통령이나 교육 수장이 누구냐에 따라 교육정책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이다. 백 년 앞을 내다봐야 할 교육정책이 몇 년 앞도 예측 못 하고 정책 결정의 위치에 있는 자의 편견이나 들끓는 학부모들의 여론에 좌지우지되어 정부의 교육정책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바싹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에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은 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부초처럼 떠돌아다니게 되었을까?
그 이유를 한 마디로 결론짓기는 쉽지 않지만, 오늘날 우리의 교육정책에서 많은 문제점을 야기한 여러 요소들 중 난 교육제도와 학부모들의 잘못된 교육관에서 그 원인을 찾고 싶다.
나는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졸업 후 중·고·대학의 모든 학교과정을 입학시험을 통해 진학했다. 초등 6년생이 소위 일류중학 입학을 위해 도시락을 2개씩 지참했으니 오늘날 학생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당시 내가 살던 지방 중소도시에는 초등학교 6개·중학교 5개·고등학교 4개 그리고 대학은 없었고, 5년제 고등전문학교(고등학교 3년+전문대학 2년 과정)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도 지방에서는 교육도시로 이름이 꽤 알려져 있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6개 반이 있었고, 한 반에 보통 65명 전후였다. 그래서 우리 동창은 380명쯤 졸업했는데 졸업생의 약 50% 정도가 중학교 진학을 하고, 나머지 50%는 어린 나이에 취업전선 - 남자는 주로 양복점·이발소·버스 조수·공장, 여자는 양장점·미장원·버스 안내양·공장 등 - 에 뛰어들었다. 당시는 중학교 진학도 입학시험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집이 부자라고 해도 시험에 떨어져 못 가고, 합격을 해도 집이 가난하여 등록금이 없어 못 가는 경우가 많았다. 어릴 적 내 친한 친구는 부친이 경찰공무원으로 꽤 부유한 편이었지만 중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졌다. 이듬해 재수하여 재도전하였지만 다시 낙방하여 중학 진학을 포기하고 양장점 직원으로 들어가서 30대 중반 한국의 유명 디자이너가 되었다. 가정형편이 넉넉했음에도 입시에 낙방하여 중학 진학을 포기한 것이다.
또 다른 친구는 일류중학교에 합격했지만 가정형편이 곤란하여 진학을 포기하고 관공서 사환으로 취업하여 고등공민학교(중학교 과정의 준학교기관)을 졸업 후 국가직 공무원 ‘5급을’(오늘날 9급에 해당) 시험에 합격하여 공직생활을 한 경우도 있다.
당시 중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고등학교와 대학교 진학으로 올라갈수록 피라미드 형식으로 학교 수와 입학정원이 좁아지기 때문에 진학률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지방 중소도시 출신인 내 초등학교 동창 졸업생 380여 명 중 대학진학은 30명도 채 되지 않았으니 10%도 안 되는 셈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교나 졸업생 숫자를 보면 영락없는 피라미드 구조가 된다.
그렇다면 중학교·고등학교나 대학진학 등 상급학교로 진학한 사람들은 사회생활에 성공하여 행복한 삶을 살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가난하고 불행한 삶을 살았을까? 물론, 교육 정도와 삶의 질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음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배운 사람은 배운 대로 못 배운 사람은 못 배운 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했을 때 성공한 삶을 살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불행한 삶을 살고 있음을 많이 보아왔다. 삶의 질을 가늠하는 척도는 학력 수준보다 얼마나 성실한가, 열심히 살았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각자의 탤런트(재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공부면 공부, 기술이면 기술, 음악이면 음악, 그림이면 그림, 체육이면 체육 등등. 교육은 이런 각자의 재능을 발굴하여 신장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교육 현실을 보면 암담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도 학교나 학생 수가 피라미드 구조가 아닌 사각형, 아니면 사다리꼴 구조를 취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이다. 초등학교 졸업생 수와 대학 입학생 수에 있어서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다.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각자의 능력이나 재능에 따라 입학 여부를 결정하는 교육제도 정착이 필요하다고 본다. 시쳇말로 개나 똥이나 모두 다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아무 데나 취직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소위 3D 업종은 구인난으로 동남아 등지의 값싼 노동력으로 대체되고, 대기업이나 금융권 등 소위 ‘좋은 직장’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향후 우리의 교육제도가 공부할 사람은 공부하고, 기술을 배우고 싶으면 기술을 배우고, 운동하고 싶으면 운동하고, 놀고 싶으면 노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면 어떨까? 다른 재능이 있고 공부에는 별 관심도 없는데 부모들 욕심으로 인하여 하기 싫은 공부를 해야 하고, 졸업 후엔 마땅한 취직자리도 구하지 못한 청년 백수로 전락하고 마는 안타까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교육 당국은 물론 학부모나 학생들이 삼위일체가 되어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난 교육자가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법학에서 대륙법이 있고 영미법이 있듯이 교육제도도 그렇다고 한다. 즉, 교육제도도 유럽풍이냐 미국풍이냐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국민은 누구나 신앙이나 성별·사회적 신분·경제적 지위와 관계없이 각자의 능력에 따라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소위 ‘교육의 기회균등’ 정신에 입각한 민주적 교육제도로서 단선형 학제를 취하고 있다. 이는 미국을 비롯하여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학제로 중등학교 졸업자 전원에게 대학진학 기회를 주는 민주주의 이상에 적합한 제도이다. 인문계나 실업계나 검정고시 출신이나 누구든지 능력만 있으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반면 복선형 학제를 취하고 있는 유럽의 경우, 지도자 계층을 위한 학교와 서민 계층을 위한 학교로 분리 되어 있는 학교체계이다. 복선형 학제는 초등학교에서는 같이 출발하지만 중등학교 수준에서 대학에 갈 수 있는 중등학교와 갈 수 없는 중등학교(직업학교나 실업계 학교)로 나누어져 있다. 여기서 단선제가 옳다거나 복선제가 옳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선제는 교육의 기회균등으로 사회이동을 촉진시켜 민주주의에 적합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진로 결정이 늦어져 방황하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반해 복선제는 진로 결정이 조기에 이루어진다는 장점이 있으나, 사회이동이 저해된다는 단점이 있다.
우스갯소리지만 ‘왜 대학교 진학에 목을 매느냐?’고 물어보면, 아마 대다수 학생들은 ‘좋은 직장을 잡아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따라서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직업교육이나 실업계 학교를 나와도 잘 먹고 잘살 수 있다면 구태여 상급학교 진학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는 논리가 된다. 언젠가 미국에서는 육체노동을 하는 남자가 대학교수인 여자랑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느 정도 발달 된 사회에서는 학력이 그 사람의 생활 수준과 행복의 척도에 있어서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반드시 중등학교로, 중등학교를 졸업하면 반드시 대학교로 진학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명색이 대졸 출신이라 아무 데나 취업할 수 없다면서 청년 백수로 허송세월을 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물론 취업에 실패하고 다시 직업학교나 전문대학에 입학하여 기술을 연마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고학력 실업자가 늘어나는 현실은 어쩔 수 없다.
일본의 경우 도쿄·교토·오사카 대학 등 소위 일류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유치원부터 일류유치원에 보내야 하고, 고액 과외를 하는 등 야단법석을 떤다고 한다. 중등학교에서는 ‘쥬크’(塾)라고 하여 우리의 입주학원에 해당 되는 학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상당수라고 하니 그 교육열이 우리 못지않다. 원하는 일류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10년 재수를 한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미국의 경우 하버드·예일·콜롬비아·펜실베니아·프린스턴·브라운·다트머스·코넬 대학교 등 북동부에 위치한 8개의 사립대학, 소위 ‘아이비리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선진국의 교육정책은 예나 지금이나 큰 변동 없이 수십 년 수백 년을 이어오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수시로 변하고 있으니 백년지대계 교육정책을 확고한 반석 위에 올려놓는 것이 급선무라고 본다.
현재처럼 ‘하향평준화‘나 ‘바보교육‘의 교육정책으로 나아간다면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버텨내기 힘들 것이다.
단선제를 택하든 복선제를 택하든 일관된 교육정책(특히, 입시제도) 유지가 급선무이며, 학부모들이나 학생들도 자신의 능력에 맞춰 상급학교 진학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